바보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그립다

by 박은석


아프리카에 슈바이처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장기려 박사가 있었다.

그는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경성의학 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하지만 그는 의사로서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쥐려 하지 않고 오히려 돈이 없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길을 택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을 위한 무료진료기관인 복음병원을 세웠고, 이후에는 영세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십자 사회보험조합과 청십자병원을 세우기도 했다.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을 위해서는 자신이 대신 치료비를 지불하기도 하고 퇴원하는 환자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하였다.

한 번은 치료비를 못 내서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를 한밤중에 몰래 병원에서 도망가게 하고 그 뒷수습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돈이 없어도 장기려 박사를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어느 해 설날 아침에 아끼는 제자가 세배를 올렸을 때 장기려 박사는 “금년에는 나를 좀 닮아서 살아보게.”라고 덕담을 하였다.

그러자 제자는 “선생님을 닮아 살면 바보가 되게요?”라고 하였다.

제자의 말을 들은 장기려 박사는 껄껄 웃으면서 “그렇지, 나를 닮으면 바보가 되는 거지.

그런데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라고 대답하였다.


언젠가 춘원 이광수는 자신을 치료해준 장기려 박사에게 “당신은 바보가 아니면 성자입니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던 장기려 박사는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에 85세를 일기로 천국으로 갔다.




장기려 박사는 대한의학회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1979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학술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겼고 해외에서도 존중받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병원을 비롯해서 여러 기관과 단체를 세웠으니까 운영자로서 높은 층에 자기 사무실을 만들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일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낮은 자리로 내려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고 신음하는 사람들과 상처 나고 냄새나는 사람들과 늘 함께 하였다.

자신이 있어야 하는 삶의 자리가 아픈 사람들이 있는 바로 그곳임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한시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야 하는 의사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 사람의 본분(本分)이다.

보초병의 본분은 초소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경계를 서는 것이다.

졸거나 딴짓하면 안 된다.

집안의 가장이 되었으면 가족들을 지켜내어야 한다.

사업을 일구었으면 회사를 살려 직원들을 돌보아야 한다.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피난 간 것에 대해서 4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구시렁거리는 것은 임금으로서 백성을 돌보아야 할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 살았으나 살았다고 할 수가 없다.


새삼 장기려 박사가 생각이 나는 것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사람을 바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다들 바보가 되기는 싫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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