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에 육상선수였던 친구가 있었다.
체격도 좋고 얼굴도 미남형으로 잘 생겼는데 실력이 별로였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하는 편도 아니었다.
수업시간에는 엎드러져 잠자기 일쑤였다.
어떤 친구들은 운동을 하려면 머리도 좋아야 한다면서 열심히 공부하기도 하는데 이 녀석은 전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유유상종 끼리끼리라고 공부하는 놈들은 공부하는 놈들끼리 어울리고 싸움박질 잘하는 애들은 또 그런 애들하고 주로 어울린다.
그런데 나는 꼭 박쥐처럼 이쪽에도 기웃거리고 저쪽에도 기웃거렸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다양한 인생군상들이 모여 있었다.
어른들이 볼 때는 문제아였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함께 있으면 똑같은 부류의 친구였다.
운동하는 친구들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참 순박하다.
그 친구도 그랬다.
어느 날 그 녀석이 나에게 “너는 공부 잘해서 좋겠다.
어떻게 머릿속에 그런 것이 다 들어있냐?”며 부러워하는 말을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녀석이 이어서 말을 했다.
“그런데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과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의 양은 똑같을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매월 시험을 보고 점수가 발표되었는데 나는 그래도 상위권이었고 그 녀석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이었는데 어떻게 지식의 양이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녀석의 말이 걸작이었다.
“너 나보다 당구 못 치잖아.
그거 수학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사람의 지식수준을 당구 점수로 계산하다니, 말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나는 당구를 못 쳤다.
당시에는 청소년에게 당구장 출입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처음으로 당구장에 갔던 날 당구가 그렇게 어려운 경기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수학 만점 받는 것보다 당구 100점 얻는 게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당구에 있어서는 나보다 훨씬 지식이 많았다.
당연히 점수도 높았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것은 쓸 데 없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텔레비전 스포츠 채널을 넘기다 보면 당구 경기가 꼭 보인다.
그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을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수이고 프로이고 굉장한 전문가들이다.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 공부하고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인정한다.
이처럼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 한 분야를 파고들어가는 사람은 굉장한 사람이다.
학교교육을 통해서 배우는 것만 지식이 아니다.
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보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풀들의 이름을 훨씬 많이 알고 계신다.
어떤 풀이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어떤 풀은 못 먹는지 정확히 아신다.
그래서 그 할머니들 앞에서 괜히 아는 체 했다가 망신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척 살짝 여쭈어보면 친절하게 잘 알려주신다.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것은 무궁무진하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참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언젠가 유용하게 쓸 날이 올 것이다.
모른다고 덮어버리면 안 된다.
어설프게 알아서도 안 된다.
모르는 것이 나오면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덥석 물어야 한다.
오늘 무엇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