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인생을 백업해 보자!

by 박은석


핸드폰을 새로 구입하면 제일 먼저 이전 핸드폰에 있던 자료들을 새 핸드폰으로 옮긴다.

주소록과 사진, 동영상, 그리고 어플들을 하나하나 옮겨놓는다.

현대인의 거의 모든 기록은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핸드폰의 자료들을 잃어버리면 인생의 한 흔적이 지워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럽게 자료를 옮긴다.

이 작업을 흔히 ‘백업(Backup)’이라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작업 중의 실수로 인한 데이터의 소실에 대비하여 원본을 따로 복사하여 저장하는 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평상시에는 따로 저장하는 일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기계가 고장이 나거나 한창 작업을 하다가 전원이 끊어질 때, 실수로 작업한 내용을 삭제해버렸을 때는 상당히 난감하다.

그런 때면 어디에 따로 백업을 받아두지 않은 일을 가지고 두고두고 후회한다.




인류의 역사는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경험을 백업하면서 발전해 왔다.

문자가 없을 때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백업하였다.

그래도 혹시 놓칠까 봐서 노래와 이야기를 엮기도 하였다.

지금은 그 말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강강술래’나 ‘아리랑’도 아마 처음 전할 때에는 분명한 의미도 함께 전달되었을 것이다.

“옛날에 옛날에~”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들은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들려진다.

제대로 백업이 된 것이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는 문서로 기록하면서 백업하였다.

처음에는 위대한 임금의 비석이나 커다란 돌에 기록하다가 점토판을 만들어서 기록하였고 잘라 붙인 대나무와 갈대를 엮은 파피루스에 기록하였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종이를 발명한 후에는 훨씬 수월하게 훨씬 방대한 자료를 기록하게 되었다.




유럽의 중세시대에는 이미 기록된 자료들을 백업하느라 굉장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수도원에서 일평생 성경과 신학서적을 전문적으로 베껴 쓰는 수도승들도 많았다.

그들은 글자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고 화려한 글씨로 과거의 기록들을 백업하였다.

그러다가 활자판이 발명되자 기록하는 일은 사람과 기계가 분담하게 되었다.

사람이 초안을 기록하면 그다음은 기계가 백업하게 되었다.

20세기에는 타자기와 컴퓨터가 21세기에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기록을 도와준다.


이제는 한석봉처럼 글씨 잘 쓰는 사람이 전문적으로 기록하는 시대는 끝났다.

대신 글을 써주는 대서소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백업하느라 시간을 들이는 일도 없다.

여기서 기록하면 빛의 속도로 지구 반대편에서 곧바로 백업받을 수 있다.




운동경기에서는 주전 선수가 빠졌을 때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선수를 백업맨이라고 한다.

앞에 있는 선수가 놓친 공을 뒤에서 받아주는 일을 백업이라고 한다.

백업은 허드렛일이 아니다.

비워서는 안 될 자리를 채워주고 놓쳐서는 안 될 것을 꼭 잡아주는 중요한 일이다.

백업이 있어서 든든하고 백업이 있어서 지킬 수가 있다.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사연들이 있다.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과 잊어버리기 아까운 추억들이 있다.

그것들을 머릿속에 담고, 가슴속에 저장하고, 공책에 적어두고, 컴퓨터에 백업해서 오래도록 보존하려고 한다.

그러면 나중에 ‘그런 적이 있었나?’, ‘어디에 두었더라...’ 헷갈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백업자료들 때문에 ‘그때는 그랬었지’라며 실감나게 옛날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이런 게 있었네!'라며 보물을 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당장 내 인생을 백업해 보자.
용량이 너무 많다면 지난 1년 치 만이라도 기록해 보자.
지금이 백업하기 딱 좋은 때 아닌가?

어쩌면 근사한 작품들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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