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종이에 글씨를 쓰라고 하면 어느 쪽부터 쓸까?
왼쪽 윗부분부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써가는 게 바른 것일까?
아니면 왼쪽 윗부분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써가는 게 바른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오른쪽 위에서부터 세로로 쭉 내려쓰는 게 바른 것일까?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한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가지만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던 때에는 오른쪽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쓰기를 했다.
히브리어, 아랍어, 이란어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으로 써 간다.
그런가 하면 비밀 암호문 같은 경우에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딱히 말할 수 없다.
그때그때 다르다.
그러니까 글씨를 쓰는 데 있어서 만국 공통의 정답이라고 할 만한 원칙은 없다.
각 언어의 특성에 따라 쓰는 규칙이 제각각 다르다.
학교 다닐 적에 앞자리에 앉으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과연 그런가?
뒷자리에 앉았으면서도 학업 성적이 뛰어난 친구들도 있었다.
학창시절 내 자리는 창가 맨 뒤에서 두 번째 자리였다.
상식적으로 수업시간에 칠판을 운동장 풍경을 구경하기 좋은 자리였다.
하지만 자리 때문에 내 성적이 오르락내리락하지는 않았다.
선생님들은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고 하셨다.
생각하면 너무나 어이없는 말이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서 좋은 집에 산다는 그 ‘좋다’는 기준이 무엇인가?
남들은 좋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별로라고 하기도 하고 남들은 안 좋다고 하는데 본인은 좋아할 수도 있다.
인생에서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산에 오를 때 보면 비싼 등산복과 등산화를 착용하고 고급 배낭을 메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차려입으면 산에 잘 올라갈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매일 산장 휴게소에 짐을 날라주는 산사람은 허름한 차림으로도 산을 잘도 탄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가벼운 레깅스 차림으로 산에 오르는 것이 유행이다.
이러나저러나 산에서는 산 잘 타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여름에 바다에 가면 비싼 수영복을 입고 늘씬하고 탄력 있는 피부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막상 물속에 들어가면 수영 잘하는 사람이 제일이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장비를 가졌다고 해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 두드러지게 띄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이제 내 앞에 2021년이라는 하얀 종이가 놓여 있다.
어떻게 써야 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다른 사람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눈치 볼 필요는 없다.
내가 점을 찍는 그곳이 바로 나의 시작점이다.
남들과 똑같은 스타일로 종이를 채워갈 필요도 없다.
글을 쓰고 싶으면 글로 채우면 되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림으로 채우면 된다.
낙서를 한다고 해서 허튼짓 하는 것은 아니다.
낙서도 때로는 작품이 된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면 된다.
중간에 남들의 작품을 기웃기웃하거나 마음이 흔들려 흐지부지해버리면 안 된다.
나만의 뚝심을 가지고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서 내 일에서만큼은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간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