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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매듭을 지어야 할 시간

by 박은석


오늘 12월 31일은 2020년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언제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은 자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조금만 더 참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바빴는가? 지나고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 때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회가 많았는데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 류시화 시인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이라고 노래하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에게는 1년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었다.

그런데 ‘다음에’라는 마음으로 많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문장을 자신의 묘비에 새겨달라고 하였다.

그는 수많은 희극 작품을 선보였지만 자신의 글과 책들보다 오히려 묘비명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의 묘비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그 얼토당토않은 글 때문에 한바탕 웃다가 곧바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숙연해진다.

그동안 우물쭈물하면서 보낸 시간과 기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우물쭈물 차일피일 미루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짧다.

순식간에 기회는 지나가버리고 마지막에 다다르게 된다.

‘그때 그렇게 선택할 걸.’하면서 한탄을 쏟아낸다 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아쉬운 결과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결단해야 한다.




한 해가 다 끝나버렸으니 내 인생의 기회조차 끝나버린 것은 아니다.

지나간 기회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기회들을 잘 선용하면 지난 시간의 아쉬움들을 만회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지난 시간들과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시간들과의 매듭을 이어가야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중에서 대나무는 겨울에도 잎사귀가 푸르러서 온갖 세파에도 변하지 않는 군자의 모습을 표상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대나무에는 다른 나무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줄기에 일정한 간격으로 뭉툭하게 튀어나온 매듭이다.




대나무는 한 뼘 정도 성장할 때마다 스스로 굵은 매듭을 짓고 그 매듭을 발판 삼아 또 그 매듭만큼 성장한다.

아마 매듭이 없다면 속이 텅 비어 있는 대나무가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쉽사리 부서져버렸을 것이다.

매듭이 둘러져 있기 때문에 대나무는 더 강해질 수가 있고, 더 높이 자랄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대나무와 비슷해 보인다.

대나무가 성장할 때마다 매듭을 짓듯이 우리 인생의 날도 어느 정도 지나가면 매듭을 하나 지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매듭을 발판삼아 올라가서 더 높은 곳에 또 하나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렇게 매듭을 하나씩 지으면서 우리는 점점 더 성장해 간다.


12월 31일 지금은 우리가 한 해의 매듭을 하나 엮고 묶어야 하는 시간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잘 살았다고 목에 걸어주는 메달과 같은 매듭이다.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가자고 머리에 두른 결사 다짐의 매듭이다.

욕심 내지 말고 여기서 매듭지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매듭을 발판 삼아서 내일부터는 또 하나의 매듭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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