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소리가 사라진 마을

by 박은석


언제부터인가 동네 이름과 길바닥 명칭이 순우리말로 바뀌고 있다.

그전까지는 한자어 이름으로 표기했는데 나라 사랑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인지 우리말 명칭으로 바꾸고 있다.

특히 도시계획에 의해서 새롭게 생겨난 마을들은 대부분 순우리말 명칭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청솔마을, 무지개마을, 동백마을 같은 정겨운 우리말 이름의 마을들이 생겼다.


내가 사는 곳은 까치마을이다.

원래부터 까치가 많이 살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마을 이름 때문인지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시에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일 것이다.

까치는 이곳이 자기네 동네인 줄 아는 것 같다.

하지만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면 까치도 도망치듯 숨어버리고 이 마을은 온통 사람들이 차지해버린다.




아이의 손을 잡고 빨리 가자며 다독거리는 소리,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이웃집 애 엄마와 소소하게 이야기 나누는 소리, 가게 앞에 서서 마치 정치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핏대를 올리는 아저씨들의 소리, 계란이 오고 제주 은갈치도 왔으니 빨리 나와서 사라는 소리,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대낮에 혼자 집을 지키는 외로운 강아지들의 칭얼대는 소리도 들리기는 한다.

하지만 해가 기울어질수록 온통 사람들의 소리만 마을을 가득 채운다.

마을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사람이다.


그런데 그 왁자지껄하던 사람들의 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마을길을 비추는 가로등을 환하게 밝히고 ‘까치마을 먹자골목’이라는 입간판도 큼지막하게 몇 개 세워두면 사람들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없다.




사람들이 없다 보니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밤이 깊어 가면 ‘부릉부릉’거리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자동차 소리조차 사라져 버렸다.

길 좌우로 늘어선 가게들은 일찌감치 불을 꺼버렸다.

‘밤 11시 이후에는 주민들을 위해서 조용히 해 주세요.’라고 써서 붙인 편의점 데크의 메모가 무색할 지경이다.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 없으니 소리조차 안 들린다.

조용해서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람 소리가 안 들리니 무섭다고 한다.

잠깐 밖에 나갔다가도 빨리 집에 돌아와야만 할 것 같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이야기했는데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소리가 사라진 도시가 되어버렸다.




사람 소리가 그립다.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소리로 떠들지라도 그 소리가 들려졌으면 좋겠다.

종업원을 부르며 빨리 달라고 외치는 주문 소리들이 듣고 싶고, 동료들과 하루의 일과를 돌아보며 상사를 욕하는 그 소리조차 듣고 싶다.

아이의 울음과 웃음소리, 청춘의 달콤한 사랑고백 소리, 장년의 우렁찬 고함소리, 노년의 나직하면서도 깊은 소리들이 그립다.


그 많은 사람소리들이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그냥 묻혀버리고 있다.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어서도 안 되고 속상하다고 투덜거려서도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입 꾹 다물고 있으라고 한다.

고구마 먹다가 목이 막힌 것처럼 속이 답답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다!”라고 외쳤던 이발사가 부러울 뿐이다.

우리 마을에도 그런 갈대밭이 한 군데쯤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그곳에 몰래 들어가서 실컷 소리를 지르고 원 없이 소리를 듣고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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