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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흘러간 노래들을 듣고 싶다

by 박은석


가끔은 흘러간 노래가 듣고 싶어 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밤이면 사랑했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김광석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늦가을이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생각이 난다.

눈 내리고 땅이 꽁꽁 얼었을 때는 나지막하게 옛이야기 들으라고 속삭이는 양희은의 통기타 소리가 그리워진다.


날씨 좋은 때를 골라 야외로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역시 세시봉이다.

가방을 둘러메고 길가에 앉아서 랄라라 노래를 부르고 싶다.

오랜만에 기타를 잡고 앉아 있으면 저절로 “모닥불 피워놓고” 흥얼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모닥불, 편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긴 머리 소녀.

이 노래들은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코드 잡기 위한 연습용 곡으로 많이 불렀다.

그래서인지 내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주 가끔씩은 가슴이 답답하여 ‘휴’ 하고 한숨을 쉬고 나서는 입에서 도라지 타령이나 아리랑 같은 민요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내가 한국 사람이 맞기는 한가 보다.

그뿐만 아니라 창가 가사가 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떠었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간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노래까지 부르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


고등학생 시절에 합창반 활동을 했어서 그런지 가곡도 빠질 수 없다.

합창반 오디션 때 불렀던 ‘목련화’나 ‘사월의 노래’는 해마다 목련이 필 때면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부른다.

아이들과 함께 동요도 부르고 싶은데 요즘 학교에서는 동요를 잘 가르치지 않는지 아는 노래가 별로 없다.

고작 ‘쎄쎄쎄’ 할 때나 몇 곡 부르는 것 같다.




한동안 아이돌 가수에 도전하겠다며 춤과 노래를 따라 하던 딸아이는 내가 흘러간 옛 노래를 한 가락 부르면 “어우! 구려!”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들이 좋다.

분위기도 좋고 가사도 좋고 곡조도 좋다.

내 입에 착 달라붙고 내 마음을 잘 어루만져준다.


노래가 없었다면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오죽했으면 푸치니라는 작곡가는 오페라 <토스카>에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라는 곡을 실었겠는가?

좋으면 좋은 대로 한 가락하고 슬프면 슬픈 대로 한 곡조 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무엇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풀 수 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는 춤을 추던데 나는 춤은 젬병이어서 노래를 부른다.

내 인생 자체가 한 곡의 노래이기 때문에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노래는 만국 공통의 언어이며 여러 세대를 하나로 꿰매는 실과 바늘이기도 하다.

말이 안 통해도 세대 차이가 나더라도 함께 노래를 부르면 서로를 하나로 묶을 수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면서 우리는 너나없이 하나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둘이 하나가 되는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특별히 흘러간 노래를 부를 때면 지난날 깊은 터널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쳤었던 젊은 날의 내가 생각난다.

그 암흑의 시간들을 견뎌내었듯이 지금의 힘든 상황도 견뎌보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그래서 가끔은 흘러간 노래가 듣고 싶어 진다.

그 노래들을 들으면 내가 그만큼 젊어진 것 같고 청춘의 기운이 다시 용솟음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흘러간 노래를 실컷 틀어놓고 그 속에 깊이 잠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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