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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살 수 있다!

클라라 하스킬을 생각하며

by 박은석

급류에 휩쓸릴 상황에서는 밧줄 하나만 붙잡아도 살 수 있다.

죽지 못해 살았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견뎠냐고 물어보면 “애들 때문에 살았지요.

저것들이 없었으면 못 살았어요.”라는 단순한 대답을 한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만 있으면 된다.


소설가 이외수 선생은 젊은 날 거의 길바닥 인생을 살았다.

그때 그를 지탱해준 것은 종이와 연필이었다.

글을 쓰면서 하루 또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에게 펜을 뺏어가는 것은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그때 작가들의 작품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인생이 사라진 것이다.

화가는 붓만 있으면, 음악가는 악기만 있으면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버틸 수 있다.

그때 화가의 붓이나 음악가의 악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요 영혼이 된다.

그것만 있으면 살 수 있고 그것을 잃으면 살 수 없다.





루마니아 태생의 유태인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1895년~1960년)은 천재 피아니스트라 여겨졌다.

6살 때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한 번 듣고서는 즉석에서 연주했다고 한다.

10살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으로 데뷔 무대를 가졌고, 15살 때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파리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얼굴도 예쁘고 실력도 좋아서 이제 그녀 앞에는 창창대로만 열린 것 같았다.


그러나 18살 때 그녀는 뼈와 근육이 굳어버리는 세포경화증을 앓게 되었다.

피아니스트에게 몸이 굳어버린다는 것은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4년 동안 깁스를 한 채 치료에 매진했지만 고칠 수 없었다.

그녀의 등은 활처럼 굽어져만 갔다.

그리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암흑의 시간을 보낼 때 그녀가 생각했던 한 가지는 피아노였다.

굽은 몸, 굳어가는 손가락이었지만 그녀는 계속 피아노를 쳤다.




10년의 시간이 훨씬 지났을 때에야 그녀는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다.

굽은 등과 몸을 보호하는 장치를 착용하고 절뚝이는 걸음으로 피아노에 앉았다.

그녀의 연주는 굉장한 테크닉을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을 가장 모차르트답게 연주하였다.

1924년에 뉴욕 연주회부터 시작하여 런던과 파리에서 그녀의 연주회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피아니스트의 명성을 쌓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그녀는 피난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시신경에 암이 발병하여 큰 수술도 받았다.

가난했던 그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이 시간들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또 피아노를 쳤다.

나이 50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휘자 카라얀도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도 그녀와 함께 연주를 할 정도였다.




클라라 하스킬은 1960년 65세의 나이로 연주회에 가던 중 기차역 계단에서 넘어져서 치료 도중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녀를 모차르트보다 더 모차르트다운 피아니스트 ‘모차르트의 모차르트’였다고 한다.

찰리 채플린은 자신이 만나본 3명의 천재가 있는데 아인슈타인, 윈스턴 처칠, 그리고 클라라 하스킬이었다고 고백하였다.


누가 보더라도 불행한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피아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전에 그녀가 종종 사람들에 한 말이 있다.


“나는 항상 벼랑 모서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에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지요.

그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감사한 일이지요.”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감사하다니!

그 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던 내 욕심이 부끄러웠다.


++ 클라라 하스킬의 사진과 관련 영상을 공유합니다


https://youtu.be/j4NFVw1rz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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