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는 그의 위대한 업적에 비해서 생전에 많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모차르트처럼 유럽 전역을 순회하면서 연주활동을 벌인 것도 아니고 헨델처럼 왕궁 작곡가로 활약했던 것도 아니다.
어렵사리 얻은 교회 음악감독의 자리를 지키며 매주일 성가대를 위한 곡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때로는 오르간 반주자로, 때로는 작곡가로, 또 때로는 지휘자로 활약하였다.
만능 음악가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생계를 위해서 투잡, 쓰리잡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자식이 스무 명이나 되었다고 그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힘도 빽도 없었으니 사람들에게 인기를 구가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바흐의 음악이 사람들에게 조명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근 100년이 지났을 때부터였다.
그리고 바흐의 음악을 세상을 알린 사람들의 중심에는 멘델스존이 있었다.
멘델스존은 1809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 안에 오케스트라단을 둘 정도였다고 하니 멘델스존의 집이 얼마나 부자였는지 가늠이 된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는데 경제적으로도 뒷받침이 되니까 멘델스존은 두 날개를 달고 음악의 창공을 날아다녔다.
<바흐 이전의 침묵>이라는 영화에서는 멘델스존이 바흐의 악보를 발견하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였다.
어느 날 멘델스존의 하인이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왔는데 고기를 포장한 종이가 범상치 않아서 멘델스존이 펼쳐보았더니 악보가 그려져 있었다.
그 악보는 놀랍게도 바흐의 <마태수난곡>이었다.
물론 실제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무려 3시간이 연주되는 마태수난곡이 포장지 몇 장에 담길 수는 없다.
그러나 멘델스존이 바흐의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바흐의 음악이 사람들의 귀에 더 자주 들리게 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멘델스존은 100년 동안 묻혀 있었던 바흐의 음악들을 한 곡 한 곡 찾아 나섰다.
발견한 곡들은 자기 오케스트라단을 통하여 연주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구이자 음악가요 출판업자인 슈만을 통해 바흐의 음악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로 인해 바흐의 음악은 오늘날까지 대중에게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만약 천국에서 바흐가 멘델스존을 만났다면 그 앞에 넙죽 엎드리고 고맙다며 큰절을 올렸을 것 같다.
아니, 그런 좋은 음악을 만들어주셔서 고마웠다고 멘델스존이 절을 했으려나?
음악가에게 좋은 음악을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일 테니까 말이다.
위대한 곡을 작곡한 바흐도 대단하지만 그 음악을 위대한 음악으로 알아본 멘델스존도 대단한 사람이다.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사람이 알아보게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멘델스존은 그 둘을 다 가진 인물이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올 때 누구나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모두가 위대한 화가이고, 음악가이며, 이야기꾼이고, 과학자이다.
아이들의 한마디는 한마디는 그 자체로서 완벽한 시가 되기도 한다.
우리도 어렸을 때 그랬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그 천재성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 속 어딘가에 숨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그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숨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의 진면목을 알아본다.
그런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천재성들이 다시 기지개를 켤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바흐처럼 숨겨진 천재인지 모른다.
숨겨진 바흐를 찾은 멘델스존과 같은 사람, 나의 천재성을 알아주는 사람, 나에게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또한 숨겨진 바흐를 발견하는 멘델스존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