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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정신?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

by 박은석


아내가 애매한 시간에 장을 보러 가서 어떨 결에 내가 아들이 풀어놓은 수학 문제들을 채점하게 되었다.

연습장에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하며 적어놓은 풀이과정을 보았다.

글씨는 제 아빠를 닮아서 괴발개발이고 머릿속으로 셈이 되는 부분은 그냥 뛰어넘어간 듯한 흔적이 보였다.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우지 않은 부분은 오히려 풀이과정을 적는데 방해가 된 것 같았다.

자기 학년보다 위의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만점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 아빠를 닮아서 수학 머리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뭐, 그 정도면 많이 맞혔다.

단지 조금 아쉬울 뿐이다.

공식을 잘 써내려가다가 끝에 가서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헷갈렸다든지, 더하기를 해야 하는데 빼기를 해 버렸다든지, 아니면 2를 써야 하는데 3을 써 버렸다든지 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았다.

그러니까 어처구니없게 틀린 것이 꽤 있었다.




아들에게 그 문제를 왜 틀렸는지 물어보면 “아! 실수했네.”하고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을 한다.

이게 집에서 풀어보는 연습문제여서 그렇지 중요한 시험이었다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머리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수학문제를 머릿속으로 풀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한 마디를 했었다.

“수학은 연필로 푸는 거야.

직접 연습장에 쓰면서 풀어야 해.”라고 말이다.


이제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가 하는 말은 잔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 나는 아들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된다고 생각하며 가능한 한 부드럽게 이야기를 한다.

“손이 게으르면 수학은 풀리지가 않아.

풀고 또 풀다 보면 실력이 늘어나는 거야.” 그런데 나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들은 너무나 쉬운 문제인 것 같은데 엉뚱한 답을 적어놓았다.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잘못 쓰냐? 어떻게 이런 쉬운 문제를 틀렸냐?’라는 말을 하려다가 움찔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일들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 일이 어렵고 힘든 일이었나?

아니다.

사실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매우 쉬운 일들이었다.

그런데 덜렁대다가 엉뚱한 답을 냈다.

손발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만 굴리다가 낭패를 보았다.

다 아는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반응을 했다가 바뀐 상황을 보지 못했다.

머뭇머뭇거리다가 시간을 놓쳐버렸다.

이리저리 재보다가 사람을 잃었다.

다 알고 있었고 자신이 있었는데 오답을 내고 말았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자세로 조심하고 신중하게 살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아들이 수학문제 몇 개 틀렸다고 내가 잔소리를 할 처지가 아니다.

아들의 덜렁대는 성격이 누구에게서 온 것이겠는가? 다 내가 물려준 것이다.




영국 배스대학교 수리과학과 교수인 키트 예이츠가 쓴 <수학으로 생각하는 힘>이란 책은 우리 삶에 수학이 얼마나 깊이 관여하는지 역사적인 실례를 들면서 아주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하기는 편의점에 가서 과자를 하나 사더라도 수학 공식을 적용해야 한다.

텔레비전 채널도 숫자로 표시되며 거리의 교통표지판에도 숫자가 들어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든지 숫자가 보인다.

수학은 원자폭탄을 만들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데만 쓰이는 게 아니라 음악의 화성에도 미술의 구도에도 쓰인다.


우리 삶은 통째로 수학공식 안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수학에서는 숫자 하나 단위 하나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다.

생과 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어디 수학만 그러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수학의 정신은 언제 어디서나 다 통용된다.

작은 차이가 결국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p.s.

오늘부터 이전까지의 글과는 작은 차이를 두기로 했습니다.

이전에는 아래 한글 프로그램 기본설정으로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제목과 이름을 쓰고 4개 문단으로 나누어 문단 사이는 한 줄 띄어서 8줄, 8줄, 8줄, 마지막 문단은 9줄로 하였습니다.


(이전까지의 글쓰기 양식이 이랬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문단 사이를 한 줄 띄지 않고 4개 문단을 모두 9줄로 통일하는 것을 기본 글쓰기 양식으로 정하였습니다.

(오늘부터의 글쓰기 양식입니다. 3줄 늘어납니다.)

작은 차이이지만 저로서는 3줄의 글을 더 쓰게 되었습니다.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저의 작은 몸부림으로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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