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준 특별한 강의시간

by 박은석


대학 1학년 때 아주 깐깐하기로 유명한 노 교수님이 계셨다.

아직 교수님들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절대적으로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은 친절하게도 그 교수님은 강의 중에 질문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절대로 질문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뭐 이런 교수님이 있나 하면서 잔뜩 긴장한 채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강의는 교수님의 논문을 교재로 하여 진행되었다.

첫 시간은 <콩쥐팥쥐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아직 논문이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했던 우리에게 교수님의 연구논문은 큰 충격이었다.

일단 논문에 쓰인 어휘들이 고등학생 시절까지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들이 많았다.

그래도 국어선생이 되려고 국문학을 공부하겠다고 앉아 있던 우리들인데 상당히 자존심이 구겨지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교수님의 논문은 콩쥐는 결혼할 준비를 다 끝냈기 때문에 사또에게 시집갈 수 있었던 것이고, 팥쥐는 아직 결혼할 준비를 다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콩쥐가 밭을 갈 때 갑자기 나타난 황소는 사실은 콩쥐의 신랑감이었다느니, 콩쥐가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담을 때 그 항아리의 구멍을 막아준 두꺼비가 사실은 남자였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콩쥐팥쥐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주제는 권선징악이고 착하게 열심히 살면 하늘이 감동을 해서 인생이 활짝 핀다는 내용이다.

시험에 나오면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답을 써냈고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오자마자 교수님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착하고 순한 우리 콩쥐를 순 바람둥이 처녀로 표현해버린 것이다.




교수님은 강의를 이어가시면서 ‘통과의례’라는 말씀을 하셨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이 되면 꼭 통과해야만 하는 어떤 의식 같은 것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콩쥐는 밭도 갈고 물도 길으면서 살림살이의 통과의례를 거쳤고, 황소인지 두꺼비인지로 표현된 남정네를 만나서 정분을 통하는 통과의례를 거쳤으니까 이제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손을 번쩍 들고 “교수님 이것은 너무 억지인 것 같습니다.

황소가 어떻게 남정네입니까?”라고 질문을 드렸다.

교수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그러면 논문을 써가지고 와.”라고 답하셨다.

친구들은 키득거리고 나는 무안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또다시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드렸다.

교수님의 대답은 “그러니까 논문을 써가지고 와.”였다.

친구들은 박장대소를 했고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수업이 끝이 났다.




그런데 그 수업시간이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두 가지의 교훈을 주었다.

그중 하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지식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나와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선입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말도 들어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또 다른 교훈은 ‘통과의례’라는 단어였다.

우리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꼭 넘어야 하는 징검다리가 있다.

꼭 올라야 하는 계단이 있다.

그 앞에서 피해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통과의례를 행하는 중이다.

반드시 통과해서 한 계단 더 올라갈 것이다.




그날의 강의실 풍경은 아직도 내 기억에 또렷하다.

학점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절대로 질문해서는 안 되는 교수님을 상대로 두 번의 질문을 던진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교수님께는 언젠가 질문을 던질 학생을 꼭 만나게 된다는 교수님의 통과의례를 완성시킨 영웅적인 학생이 되었다.

나를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준 특별한 강의시간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