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이런 지도자를 꿈꾸고 있습니다

by 박은석

1337년에서 1453년까지 무려 116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는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싸웠다.

이른바 백년전쟁이었다.

전쟁은 결국 프랑스의 승리로 끝을 맺었고 영국은 유럽 대륙의 땅을 모두 잃었지만 프랑스의 손실도 어마어마했다.

특히 영국에서 가까운 프랑스의 해안지방은 숱한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칼레라는 섬도 영국의 주요 공격 대상지였다.

시민들은 똘똘 뭉쳐서 1년 동안 영국의 공격에 저항하였지만 식량이 떨어지자 결국 항복을 선언하였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는 처음에는 칼레의 모든 시민들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시민들의 간청으로 뜻을 거두었다.

그 대신 대표로 6명을 처형하겠다며 시민들에게 6명을 뽑아오라고 하였다.

칼레의 시민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혹시 처형될 대표 6명 중에 자신이나 가족이 뽑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사람의 목숨은 다 소중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을 6명의 대표를 뽑기란 쉽지가 않았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그 누군가에 자기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제비뽑기를 하자는 말들도 하였다.

그때 칼레에서 최고 부자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라는 사람이 자신이 대표로 죽겠다고 하며 나왔다.

그리고 “칼레의 시민들이 용기를 가지고 나오라!”라고 외쳤다.

그의 행동과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왔다.

그중에는 시장과 법률가 등 귀족도 있었고 상인도 있었으며 심지어 그의 아들도 있었다.


그렇게 자진해서 나온 6명의 대표들은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걸고 에드워드 왕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 그 모습을 본 왕비가 그들을 처형하면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며 사면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왕은 그 간청을 듣고 그들을 모두 살려주었다.




1884년에 칼레시는 오귀스트 로댕에게 칼레를 구한 이 6명의 시민들에 대한 조각상 제작을 의뢰하였다.

그래서 1895년부터 지금까지 칼레 시청 앞에는 ‘칼레의 시민들’이란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칼레 시민들의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다.

단지 사람들은 위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대신하겠소!”라고 손들고 나오는 지도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혀 꼬부라진 발음을 하니 괜히 멋있어 보이는지 말들은 참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책임 있는 높은 자리에서 그 자리에 걸맞은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아랫사람에게 “네가 대신해라!”라고 말하는 사람은 쉽게 볼 수 있다.

자리만 높았다뿐이지 그의 인격이나 삶을 존경하기는커녕 욕하고 저주하며 돌아선다.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때면 아버지는 과연 어떤 사람이냐고 꼭 물어본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중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의 기억을 헤집고 다닌다.

한밤중에 둘째 누나가 퇴근하여 집에 왔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급하게 달려오다가 넘어졌는지 스타킹도 찢어져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근처에 있던 고등학교의 학생 몇이서 누나를 희롱하며 쫓아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미친 사람처럼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 밤에 그 학교를 찾아가 난리를 치셨다.

다음날도 그러셨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냐고요? 이 생명 바쳐서 가족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내 대답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지도자가 누구냐고?

자기 생명을 바쳐서 아랫사람들을 지켜내는 사람이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uguste_Rodin-Burghers_of_Calais_(photo).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