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친구들 중에 소아마비 장애인들이 있다.
그러니까 시골 초등학교에 50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 중에 4명이 이 질병으로 고생을 했다.
그중의 한 친구는 양쪽 다리가 다 마비가 되어 있어서 목발이 없으면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체육시간이면 나무 밑 그늘에서 조용히 앉아서 친구들을 지켜보든지 아니면 텅 빈 교실을 지키든지 했다.
4명 중 2명은 교회에서도 매주 만났다.
아마 부모님들이 일주일에 한두 시간 교회라도 가서 놀고 오라고 허락했을 것이다.
집에만 있으면 서로 부담이 됐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소아마비 친구들은 성격이 좋아서 잘 놀든지 아니면 공부를 잘 하든지 했다.
아마 뭐든지 잘하는 게 있어야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어울려 놀다가도 불현듯 ‘얘들은 나중에 어떤 직장에 갈까? 어떤 사람과 결혼할까?’라는 생각들을 했다.
50명 중의 4명이라면 너무 많은 퍼센티지일 것이다.
유독 우리 동네에만 그 질병이 심했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어디에서나 소아마비 환자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부모님들이 아기들에게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텐데 살아가느라 바쁘셔서 갓난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셨던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는 해마다 8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소아마비에 걸렸다고 한다.
소아마비는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질병이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국민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은 심각한 재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난 2000년 10월에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소아마비 종식국임을 선포하였다.
내 친구들이 1970년대가 아니라 200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참 운이 없는 녀석들이다.
소아마비는 결코 만만한 질병이 아니었기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백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백신 개발에 성공만 하면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의 조너스 소크(Jonas Edward Salk) 교수도 연구진들을 꾸려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시제품을 가지고 쥐와 원숭이 등 동물 실험을 먼저 하였다.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에게 임상실험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자신이 직접 실험대상이 되기로 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52년 3월 26일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소크백신’이라는 소아마비 백신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1955년 4월 12일, 미국의 44개 주에서 소크백신이 안전하다고 발표하였다.
순식간에 소크는 대단한 부와 영예를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소크는 자신이 개발한 특허를 가지고 돈을 버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제약회사 아무 곳에나 전화 한 통만 하면 되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백신 제작의 모든 과정을 전 세계에 무료로 공개하였다.
그 결과 어느 제약회사든지 소크백신의 복제약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세계 어디서든지 저렴한 가격에 접종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는 1달러도 안 되는 지역들도 많다.
사람들은 그 좋은 기회를 왜 그렇게 날려버리느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크는 그 좋은 기회를 그렇게 선용했다.
그리고 그의 선택으로 인류는 소아마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100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인생을 절대로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정신적인 가치를 모르는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마 소크처럼 사는 사람일 것이다.
++김형석 교수님 인터뷰(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https://news.joins.com/article/23981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