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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07. 2021

한 끗 차이인 선생님 때문에 생긴 꿈


재난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무너지는 건물이나 다리를 가까스로 탈출하거나 질주하던 자동차가 절벽 앞에서 기적적으로 멈춰서는 장면이 나온다.

보는 이들은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죽음을 모면한다.

1초만 더 갔으면, 한 발자국만 더 내디뎠으면 끝장났을 텐데 그 1초 차이로, 한 발자국 차이로 생명을 구한다.

영화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간발의 차이로 생사가 달라지는 것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아버지가 삼풍백화점에서 일을 하셨는데 1995년 그날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셨다.

백화점 안과 밖은 불과 몇 걸음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그랬다.

내 동생은 어렸을 때 찻길에서 놀다가 버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그냥 뛰어들었는데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버스 밑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다행히 살았다.




부지런히 달려왔는데 지하철 스크린 도어가 내 앞에서 스르르 닫힐 때가 있다.

버스 뒤꽁무니를 손으로 쳐 보지만 운전기사는 듣는지 못 듣는지 그냥 출발해버릴 때도 있다.

한 끗 차이로 놓친 것인데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억울한 마음이 든다.

그런가 하면 선착순 몇 명에게 주는 선물이 딱 나에게까지 와서 끝날 때가 있다.

내가 맨 마지막 수혜자라는 기쁨은 마치 굉장한 것을 얻은 것 같다.

기껏해야 고무장갑인데도 그렇다.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를 치렀는데 평균 성적이 89.45였다.

당시에는 반올림 제도가 있어서.

89.5면 90점이라고 쳤는데 0.05점 차이로 나는 89점짜리 성적표를 받았다.

90점과 89점은 고작 1점 차이였지만 그냥 1점이 아니었다.

90점대의 학생과 80점대의 학생으로 구분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사오입’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작은 한 끗 차이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만 했던 사람도 있었다.




어릴 적에 위인전을 꽤나 읽었는데 한동안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내 이름과 너무나 비슷한 인물을 발견했다.

‘박은식’ 선생이었다.

그는 조선의 지식인이자 언론인이었으며 역사학자이고 독립운동가였다.

그리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2번째 대통령이었다.


그는 일제가 조선을 병탄하고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하자 “국체(國體)는 망하더라도 국혼(國魂)이 불멸하면 부활이 가능한데 지금 국혼인 역사마저 없어지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라고 한탄하였다.

고국을 떠나 항일독립운동을 이어가는 중에도 틈틈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다져놓았다.

그가 쓴 <한국통사(韓國痛史)>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고통과 통곡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그 책을 보면서 명성황후의 마지막 모습이 상상되었다.

힘이 없는 백성들의 통곡소리와 나라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가슴이 미어졌던 기억이 있다.




박은식과 박은석은 정말 한 끗 차이이다.

얼핏 봐서는 그 이름이 그 이름 같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인물이다.

하지만 나는 미세한 차이인 그 한 끗만큼이라도 박은식 선생을 닮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글을 쓰는데 누구는 저런 삶을 살고 누구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경쟁심과 비교의식도 생겼다.

그리고 그 한 끗 차이로 그분이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그분이 그렇게도 전해주고 싶은 국혼(國魂)을 내 가슴에 담고 싶었다.


나는 대학에서 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을 국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한국어라고 배웠다.

비록 대학 졸업 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한 번도 해 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내가 한국어교사라는 자의식이 있다.

우리말 속에 들어 있는 국혼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한 끗 차이인 선생님 때문에 생긴 꿈이다.

+ 사진 출처 : 주니어 김영사 https://100.daum.net/multimedia/45_13000096_i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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