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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24. 2021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은 나의 실수였다


아들에게 버럭 큰소리를 쳤다.

무슨 일인지 누구의 잘잘못인지는 밝히고 싶지 않다.

큰소리를 친 것은 나였고 참지 못한 것도 나였다.

큰소리는 한두 마디였지만 그 순간 집안 공기가 달라졌다.

어색하고, 무섭고, 두려운 기운이 어느새 식구들을 꽁꽁 묶고 있었다.

겨울이라 바깥문은 꽁꽁 잠갔는데 이 나쁜 공기는 언제 어떻게 들어와서 숨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들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다가 내가 큰소리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우리 식구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서 씩씩거리다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먼저 자리에 누워버렸다.

고상한 척 휴대폰 어플 ‘밀리의 서재’에서 세계문학전집 한 권을 택했다.

하필 책을 골랐는데 제목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다.

딱 내 수준이다.

오디오북이 읽어주는 소리를 듣다가 스르르 1시간가량 잠들어버렸다.

그새 딸아이는 친구를 만난다고 밖에 나가 있었다.




어색한 시간에 잠이 깨서 어색한 표정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들은 저쪽 방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조용히 아내가 다가와서 내가 잠든 사이의 상황을 소곤소곤 들려주었다.

결론은 큰소리쳐서 될 일도 아닌데 왜 큰소리를 치냐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빠의 목소리가 큰 것만으로도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과연 그렇다.

나도 아이였을 때 집에서 큰소리가 나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썼던 기억이 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부모가 큰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설령 자기가 잘못을 했을지라도 부모는 큰소리치지 말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기댈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부모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세상에 내쳐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실수했다.

잘못했다.

이건 빨리 인정하는 것이 낫다.

괜히 아이를 불러다가 잘못했다고 빌라고 야단을 쳐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더 애매한 상황만 만들어진다.

내가 성장하면서 숱하게 경험을 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무서웠고, 서먹했고, 싫기도 했었다.

아마 내 아버지도 그때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셨을 것이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외쳤던 말이 있다.

‘나는 나중에 커서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내가 아빠가 되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면서 닮아가고 미워하면서도 닮아간다는데 딱 그 격이다.

지금 이 안 좋은 사슬을 내가 끊지 않으면 내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서 나의 안 좋은 면을 닮아갈 것 같다.

부끄럽지만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가서 큰소리쳐서 미안하다며 머리를 쓰다듬고 왔다.

친구들을 만나고 있을 딸에게는 카톡으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괜찮다고 하는 반응인데 가족끼리 사과하고 용서하는 표현이 어색하기는 하다.

잠깐 시간이 필요하겠다.

아마 이 밤에 자고 아침이 되면 괜찮아질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오늘은 아이들 때문에 인생의 귀한 교훈을 배웠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런데 실수한 그 일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해야 한다.

말이든 글이든 문자메시지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우정의 말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꼭 그렇게 해야 하냐며 귀찮아해서는 안 된다.

사소한 어색함들이 모여서 관계의 벽을 두껍게 만든다.

나중에 그 벽을 허물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러기 전에 지금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게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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