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젓가락질을 희한하게 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검지와 중지, 약지로 젓가락질을 하는데 아들은 중지와 약지, 소지로 한다.
그렇게 해서 음식이 집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어딘지 불편하다.
젓가락질을 잘 못한다고 남들한테 군소리 들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젓가락질을 잘 배우라고 한마디를 한다.
그러면 아들은 “뭐 어때요? 먹기만 하면 돼지.”라고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젓가락은 먹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가지고 이러이러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정해 놓은 법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젓가락의 표준 사용법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사용법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다.
특히 우리 한민족은 가장 정교하게 젓가락을 사용할 줄 아는 민족이다.
그 자부심은 참 좋은데 그 자부심이 다른 사람을 측정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손이 굳으면 제대로 젓가락질을 할 수 없다.
마비가 오면 더욱 그렇다.
마음이 급하거나 젓가락질로 집어 올리기 힘든 음식도 있다.
아예 젓가락으로 찔러 먹는 것이 더 편하고 나을 때도 있다.
비단 젓가락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밥은 왼쪽에, 국은 그 오른쪽에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는 것이 밥상 차림의 기본이다.
그러나 국이 왼쪽에 가고 밥이 오른쪽에 와도 먹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위치가 달라도 상관없다.
아예 숟가락으로만 먹는 사람도 있고 젓가락으로만 먹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잘만 먹으면 되는 거다.
그런데 법을 갖다 대면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잘 먹던 밥도 그만 먹고 싶어진다.
무엇이 중요한가?
식사하는 법인가 아니면 식사 자체인가?
답은 뻔하다.
잘 먹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법을 들이밀면서 법대로 하지 않으면 잘못되었다며 야단이다.
밥상에서도 이런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에서는 얼마나 많은 방법과 방식이 충돌하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것은 틀린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역지사지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런 방식으로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 때문에 그런 방식이 익숙해진 것이다.
젓가락질 못한다고 밥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포크를 사용하면 된다.
포크를 사용하는 문화 속에서 살면 그게 더 편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손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는 가르침 때문에 맨손으로 먹는 것이 유행했었다.
그러니까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문명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렇게 식사하는 것이 편했고 더 잘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나와 상대방의 문화 차이를 가지고 어느 것이 더 좋다는 듯이 우열을 가릴 필요가 있을까?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문화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까?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고도 괜찮다고 여길 사람은 없으니까.
아무리 다른 사람의 것이 좋아 보여도 자기 것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서로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다양함 속에서의 조화라는 더 좋은 것이 만들어진다.
도화지에 한 가지 색으로만 칠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알록달록 다양한 색이 칠해졌을 때 더 수준 높은 작품이 된다.
내 눈에 좀 어색하게 보이더라도 괜찮다고 인정해준다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그래! 젓가락질 아무려면 어때?
잘 먹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