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오늘을 쓴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받은 복도 잘 간수하자
by
박은석
Feb 12. 2021
아래로
새해가 되면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러면 저쪽에서도 같은 말로 답례를 한다.
어쩌면 의례히 하는 인사치레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흩어졌던 식구들이 부모님께로 모이고 전국 각지에서 고향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집안에 따라서는 반드시 한복을 갖춰 입고 큰절로 세배를 드려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아랫사람이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면 웃어른은 듣기 좋은 말로 덕담을 베풀어주시고 준비한 물건이나 돈으로 세배에 대한 답례를 하신다.
서로가 서로에게 복을 비는 축복(祝福)의 시간이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서 기왕이면 소원하는 일들이 올 한해 동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한다.
가끔씩 그런 표현이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콕 찌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자신을 향한 식구들의 애정 어린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이 ‘부자 되세요’라는 말로 대체된 적이 있었다.
어느 신용카드의 광고문이었는데 빨간 옷을 입고 나온 여배우가 활짝 웃으며 “부~자 되세요”라고 외친 말이 유행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부쩍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돈 많이 버세요’라는 말로 통용되는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기사 자본주의사회에서 돈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을까?
돈만 있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믿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새해 인사로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을까 싶어서 부자 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왠지 씁쓸해졌다.
우리가 생각해왔던 ‘복’이 돈 많이 버는 것으로 대체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일을 그만두신 분들에게는 부자 되라는 인사가
장난
처럼 들릴 수도 있다.
복 받으라는 말이 흔해 빠진 표현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넓고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 다섯 가지를 꼽아서 ‘오복’이라고 했다.
장수의 복(壽, 수), 부유한 삶의 복(富, 부), 건강의 복(康寧, 강녕), 덕을 좋아하여 즐기는 복(攸好德, 유호덕), 제 명대로 살다가 평안히 생을 마감하는 복(考終命, 고종명)이다.
이 5가지의 복은 누구나 다 탐내는 좋은 것들이다.
이것들이 두루 갖춰진
사람이 그야말로 복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새해 인사로 복 많이 받으시라고 말씀드릴 때는 이 5가지 항목들을 골고루 누리시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인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요소들은 다 빼버리고 ‘복은 곧 돈’이라는 식으로 만들어버렸으니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다.
인사를 하는 이나 인사를 받는 이나 돈만 밝히는 속물인간처럼 여겨져서 그 인사말이 불편했던 것이다.
복 받기를 원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중국 사람들은 ‘복(福)’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서 현관문에 거꾸로 붙여둔다.
우리 집에 들어온 복은 다시 나가지 말라는 표현이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던 나라들에서는 “God Bless You!”라는 인사를 한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이니까 역시 복 받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사말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복이 저절로 자기 것이
되지는 않는다.
복은 마치 탱탱볼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두 팔 벌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복이 날아와도 잡을 수가 없다.
내 몸만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내가 잘 준비해서 복을 품에 안았다고 하더라도 꽉 붙잡지 않으면 물컹하는 사이에 튕겨나가 버린다.
우리에게 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는 복도 많이 받고 받은 복도 잘 간수하는 한 해로 살아야겠다.
keyword
축복
인사
설날
58
댓글
26
댓글
26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구독자
597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젓가락질 못하면 어때? 잘 먹기만 하면 된다!
이제는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때이다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