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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때이다

by 박은석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가 하루는 사냥을 다녀와서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 앞서가던 사냥개가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행동이 달라졌다.

투르게네프가 자세히 보았더니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새끼 참새가 땅바닥에서 어설픈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사냥개가 새끼 참새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나무 위에 있던 어미 참새가 갑자기 돌멩이처럼 날아왔다.

어미 참새는 온 힘을 다해 부르짖으며 이빨이 허옇게 드러난 개의 입을 향해 연달아 두 번 세 번 달려들었다.

개와 부딪힌 충격 때문인지 새끼를 구하고자 하는 급한 마음인지 참새의 온몸은 벌벌 떨고 있었으며 목소리도 쉬어있었다.

갑작스런 참새의 공격에 당황한 사냥개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아마 어미 참새의 힘을 인정한 모양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투르게네프는 급히 개를 부르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참새>라는 제목으로 이 에세이를 발표하였다.




어미 참새의 저항을 보면서 투르게네프는 경건한 생각에 잠겼다고 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일인데, 사냥개 입장에서는 어미 참새라고 한들 한입거리밖에 안 되는데, 어미 참새 입장에서는 사냥개가 굉장히 큰 괴물로 보였을 텐데, 그럴 때는 안전하게 높은 가지 위에 앉아서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인데, 그 이성적인 판단보다도 강한 힘이 어미 참새를 사냥개에게로 돌진하게 한 것이다.

새끼를 구하려고 자기 몸을 내던진 것이다.

자칫하면 두 마리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달리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새끼를 잃고 어미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어미도 심한 공포감에 두려웠지만 고함을 지르며 미친 참새처럼 달려들었다.

정작 이게 무슨 사태인지 모르는 새끼 참새만 태연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르게네프는 사랑은 죽음보다도, 공포보다도 더 강하며 인생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 어딘들 안전한 곳은 없다.

보금자리에서 떨어진 새끼 참새처럼 우리가 아늑하다고 여기는 그 옆자리에 사냥개가 입을 쩍 벌리고 앉아 있을 수 있다.

아니 이미 내 머리 위에서 사냥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수도 있다.

도망칠 수도 없고 빠져나갈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꿈속에서도 보았고 실제로 살아가면서 여러 번 겪어보았다.

그 두려운 상황들을 극복하고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사냥개와 싸워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싸울 줄도 모르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위에서 번개처럼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있었다.

나의 부모님이 그랬고 형제들이 그랬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랬다.

내가 알든 모르든 그들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나 대신 싸워주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편이고 한팀이라며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그 도움으로 내가 살았다.




어미의 희생으로 살아난 새끼 참새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그도 어느덧 어미 참새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자기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서 여러 번 몸을 던졌을 것이다.

안 봐도 뻔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어미에 그 새끼이다.

사랑은 핏줄을 통해서 어미에게서 새끼에게로 유전되어 흐른다.

그리고 그 핏줄을 통해 어미와 새끼는 계속 만난다.


참새도 이런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사냥개가 군림하는 무서운 곳 같아 보인다.

시시각각 우리를 죄어오는 공포의 그림자가 있다.

그런데 내가 어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를 도와주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사랑이다.

희생이다.

내가 그 사랑을 받았다면, 내가 그 희생을 누렸다면, 모른 척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받은 것은 갚아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랑의 빚, 희생의 빚을 갚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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