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연세 많으신 할머니에게 하루 중에 제일 즐거운 시간이 언제냐는 말씀을 나눈 적이 있다.
그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셨는데 햇빛 따사로운 오후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 얼굴을 보는 게 제일 재밌다고 하셨다.
그때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 제각각인데 희로애락 모든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역시 구경 중의 제일 재밌는 구경은 사람 구경이다.
소설을 읽을 때나 영화를 볼 때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주인공 옆에 몰래 숨어서 그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결정적인 사건을 목격하기도 한다.
투명인간처럼 몸을 숨기고 있기에 그 누구도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이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았던 뒷골목의 풍경들을 하나씩 내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100년 전 서울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때 그들이 살았던 집의 구조는 어땠는지, 옷차림과, 교통수단, 부엌의 땔감은 어떠했는지 생각한다.
3.1만세운동이 시작된 파고다공원의 분위기와 그 함성의 크기도 느껴본다.
그들이 손에 들었던 태극기의 모양은 어떠했으며 종이에 그렸다면 찢어지지 않았을까, 천에 그렸다면 그 비싼 천을 어떻게 구했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러다 보면 소설이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장처럼 들린다.
외국소설을 볼 때면 그런 상상력은 더욱 큰 날갯짓을 한다.
빅토리아여왕의 치세 기간이었던 1800년대 말의 런던이 배경이라면 산업혁명으로 여기저기 공장이 들어서고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도시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로 질퍽한 슬럼가가 형성된 모습도 그려본다.
그게 그들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이런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현실의 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보다 그럴싸하게 치장을 한 그림이 잘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깨끗하지가 않았다.
온갖 먼지와 오물과 냄새가 뒤범벅이 된 지저분한 세상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보면 17, 18세기의 길거리가 얼마나 역겨웠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온갖 오물을 길에다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도시는 시궁창이 되었을 것이고 마차가 달릴 때마다 말들이 쏟아놓은 배설물들로 길에는 악취가 진동했을 것이다.
아침부터 냄새에 질식하고 공장 매연에 숨을 헐떡이고, 검은 연기로 가려진 잿빛 하늘을 보면서 그 시절의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살았을까?
분명 조금만 견디면 나중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이 그때보다 더 좋은 세상은 아닌 것 같다.
땔감을 바꿔서 공장 매연은 잡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자동차가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이 기뻐한 이유는 빠른 속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차의 말들이 싸지른 배설물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른 말똥에서 가루가 날리면 도시 전체에 악취가 진동했다.
그 가루를 마신 사람들은 기관지염을 앓아 심한 기침을 하고 피부염을 앓아 피가 나도록 긁어댔다.
마차를 탈 때마다 이런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런데 자동차가 나타나자 말 때문에 지저분해졌던 거리는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다.
맑은 공기를 마신 사람들의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금세 또다시 어두워졌다.
이번엔 또 무엇이 문제인지 자동차 문마다 짙은 색칠을 해서 투명인간도 들여다볼 수가 없다.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래전 사람들의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얼굴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