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기다리고 있냐고 물어보면 자신도 잘 모르는 사람인데 이름이 아마 ‘고도(Godot)’라고 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들에게 고도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다.
고도가 언제 올지도 모른다.
언젠가 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들 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그들은 관심이 없다.
지나간 사람들이 고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지나가면서 고도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 올 것이라는 말을 한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다음날 그 자리에서 또 고도를 기다린다.
그러나 고도는 그날에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에 세월은 흘러갔고 앙상했던 나무에는 잎이 돋았다 지고 꽃이 피었다 졌다.
그래도여전히 고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계속 고도를 기다리며 또 하루를 보낸다.
프랑스 소설가 사무엘 베케트가 발표한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의 내용이다.
읽다 보면 주인공 같은 저 두 사람에게 화가 날 정도로 답답함을 느낀다.
미련 곰탱이같은 사람들이라고 욕을 퍼부어주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그들에게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보인다.
막연하게 기다린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가 마치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듯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사람들.
시간이 지나 환경이 바뀌어도 아무런 발전이 없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떠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일까?
대박이라고 외칠 수 있는 행운을 기다리는 것일까?
울리지 않는 휴대폰만 계속 들여다보면서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 도처에 널려있다.
전쟁터에 나간 연인을 기다리다가 할머니가 되었다는 이야기,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의 전설, 아침에 집을 나간 사람이 저녁에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았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삶 자체가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설날에 세뱃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며 어서 설이 오기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 설레며 기다린다.
결혼 날짜를 잡으면 달력에 날짜를 하루씩 지워가며 기다리고 임신을 하면 어떤 아이가 나올까 조심스레 열 달을 기다린다.
학교에 간 아이가 집에 올 시간이면 맛있는 찬거리를 준비하며 기다린다.
시험을 치르면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식당에서 번호표를 받으면 전광판에 내 번호가 뜨기를 기다린다.
매일매일이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토록 기나긴 기다림에 비해서 그 결과를 마주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내가 이러려고 그 긴 시간을 기다렸나?’하는 허탈감마저 든다.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마치 소설 속 두 남자를 바라보며 느끼는 허무함을 우리에게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이 있어서 인생이 행복한 것 아닐까?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고도(Godot)가 올 것이라는 희망에 항상 부풀어 있다.
그들은 남루하며 무식하며 아무런 일거리도 없고 머무를 집도 없는 것 같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기다림 속에 담겨 있는 희망 아닐까?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는 이의 목소리에도, 발자국소리에도 가슴이 출렁거리며 기분 좋은 상상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