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Feb 16. 2021

새벽에 물 한 잔을 마시며 든 생각


새벽에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셨다.

빈속에 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깨끗이 청소되는 느낌이다.

내 몸을 깨우는 데는 한 잔의 물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나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로 시작하는 강은교 선생의 시를 좋아했었다.

떠나가는 사람에게 하는 약속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나중에 나중에 어느 집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한 시구이다.


물은 생명체의 기본물질이다.

사람 몸의 70퍼센트도 물이고 지구의 70퍼센트도 물이라고 한다.

직접 재 보지는 않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가 그렇다니까 그렇게 믿고 있다.

물이 있으면 생명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래서 화성 탐사에 나선 로봇들이 찾고 있는 것도 물이다.

만약 화성에서 물을 발견한다면 로봇들도 흥분하고 기뻐 뛸지 모르겠다.

물은 그만큼 반가운 존재이다.




지금에야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콸콸 쏟아지지만 이런 삶을 살게 된 것도 고작 50년 안팎이다.

커다란 물통을 들고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수도에 가서 줄 서서 물을 길어왔던 때도 있었고, 마당에 우물을 파고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물장수가 골목을 돌면서 물 배달을 했던 적도 있었고 아예 대동강 물로 장사를 벌인 김선달이란 인물도 있었다.


혹시나 농사철에 비가 안 내리면 어떡하나 하는 심정으로 마을마다 대규모의 저수지를 만들기도 했다.

물이 없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군소리 없이 노역에 동참하였을 것이다.

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옮길 때도 근처에 물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살폈다.

물이 없다면 아무리 좋아 보이는 땅일지라도 접어야만 했다.

아니면 먼 곳에 있는 강의 흐름을 바꿔서라도 그곳으로 물을 끌어와야만 했다.

물이 있어야 도시도 생긴다.

물이 없으면 도시도 죽는다.




그런데 제아무리 물이 좋다고 하더라도 물이 너무 많으면 그것도 골치이다.

물은 흐르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물이 모이면 반드시 흘러간다.

그리고 물 곁에 있는 것들도 물의 흐름과 함께 휩쓸릴 수밖에 없다.

그때는 물이 좋다는 생각보다 무섭고 두렵게 느껴진다.

을지문덕과 강감찬 장군 같은 위인들은 이 두려운 물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물이 너무 많아도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다.

물로 배를 채운다고 해서 배부르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탈 날까 걱정을 해야 한다.

물이 많아 물컹물컹해진 음식은 먹을 수도 없다.

사람 성격도 물처럼 물렁물렁하면 물러 터졌다며 가볍게 대한다.

물이 많을 때는 빨리 물길을 터서 잘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한양성 궁궐 앞에 물이 차고 넘치는 것을 막으려고 개천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는 청계천이라는 물길을 하나 얻었다.




물처럼 살고 싶다면 잘 생각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차오르고 어느 정도까지 빠져야 좋은 물인지 그 수위조절을 잘해야 한다.

좋은 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수준을 유지할 때만 좋은 효과가 발휘된다.

개미에게 내가 마신 한 잔의 물을 쏟아부으면 그 개미는 졸지에 재앙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목마른 코끼리에게 내가 마신 한 잔의 물을 주면 도리어 화만 돋울 것이다.

나에게 적당량이라고 해서 그들에게까지 적당한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딱 맞는 표준 적당량은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환경에 따라 다르다.


이 이치를 일찍 깨달았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다.

내가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준 많은 물에 곤혹스러워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준 적은 물에 섭섭해했을까? 

나는 선심을 쓴다고 했는데 도리어 화를 끼쳤고 서운함을 안겨준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매거진의 이전글 내 마음에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