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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9. 2021

나는 오늘도 주사위를 던지는 게임보이이다


이십대 때의 나는 게임보이(Game-Boy)였다.

그러니까 시작은 동기들과 함께 떠난 신입생 MT부터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서른 명 중에 서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홀로였다.

하루 이틀 얼굴을 대하면서 이제 막 친구를 맺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MT를 간 것이다.


청량리역 광장 시계탑 밑에서 집결, 비둘기호를 타고 대성리역에서 하차, 강가에 있는 민박촌 도착이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비둘기호 열차는 청춘의 광기들을 고스란히 받아준 고마운 존재였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노래를 불러도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모두가 너그럽게 대해주었다.

철커덕철커덕 느릿느릿하게 달려가는 열차가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갈 때면 그야말로 난리였다.

“악! 누구야?”, “껴안지 마!”, “누가 뽀뽀했어?” 그 소리에 까르륵 웃다보면 어느덧 기차는 대성리에 도착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신선들이 나올 것 같은 고즈넉한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속에 남아 있던 어색함이라는 것들은 다들 북한강에 던져버렸다.

이쪽에서는 삼겹살을 굽고 저쪽에서는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준비한 밑반찬과 라면 넣은 참치 김치찌개가 고작이었지만 그것만 먹어도 밤새도록 견딜 수 있는 강한 체력들이 있었다.

해는 저물었고 거나해진 분위기에 자연스레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면 누군가 나서야 한다.

바로 나다.


아이엠그라운드, 수박, 디비디비딥, 전깃줄, 007게임 등 방 안에서 한바탕 하고 그다음에는 밖에서 또 한 바탕 짝짓기게임, 헤쳐모여, 산타마리아 춤으로 뒤집어 놓았다.

밤늦도록 놀다가 체력이 달리면 자연스레 하나 둘 모닥불 주위로 모였고 통기타 반주에 맞춰서 나직하게 “모닥불 피워놓고~”를 불렀다.

그렇게 청춘의 밤이 깊어갔다.

그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게임보이였다.




내가 친구들보다 게임을 더 많이 알았던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 게임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알려준 게임들도 많이 있었고, 나 스스로도 이번에는 무슨 게임을 할까 궁리하며 책에서 찾아보고 실제로 진행해 보는 중에 서서히 실력이 늘어갔다.


개인전이든 단체전이든 게임의 끝에는 최종 우승자가 나온다.

똑똑한 녀석이 될 수도 있고 운동신경이 탁월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게임은 수학문제 푸는 머리로는 이길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다 보면 시간 초과에 걸린다.

게임에는 게임 머리가 따로 있다.

순발력 좋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은 여지없이 중간에 탈락한다.

오히려 둔감한 친구들이 끝에까지 간다.

춤 잘 추는 친구들은 탄성과 박수를 받지만 춤 못 추는 친구들은 모든 이들을 배꼽 잡게 만든다.

게임에는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내 인생도 하나의 게임 같다.

주사위 게임이랄까?

머리를 굴려서 잘 던졌는데 1이 나오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던졌는데 연달아서 6이 나오기도 한다.

좋은 게 좋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지름길도 있고 미끄럼길도 있기 때문이다.

1이 나왔는데 목적지까지 직행을 탄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없다.

6이 나왔는데 아뿔싸! 미끄럼길에 걸린다면 도로 저 밑에까지 내려가야 한다.

지금보다 더 내려가기 싫다고 주사위를 안 던질 수는 없다.

내 차례가 오면 반드시 던져야 한다.


앞서 가고 있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뒤 따라간다고 해서 주눅 들 필요도 없다.

순위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기도 하고 나중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것 가지고 누가 뭐라고 안 한다.

도착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번 두 번 던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다다른다.

나는 오늘도 주사위를 던지는 게임보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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