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스물네 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아니면 얼마나 짧은 시간일까?
절대적인 시간은 세팅되어 있는데 그 안에서 내가 경험하는 일은 얼마 정도 될까?
사람을 만난다면 몇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나의 하루 일과를 대충 헤아려본다.
새벽 4시 40분에 휴대폰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 물 한 컵 마시고 새벽기도회를 간다.
컨디션이 좋으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고 컨디션이 별로이면 한 시간 더 잠을 잔다.
해롱대면서 몇 시간을 일어나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깔끔하게 한 시간 자는 게 낫다.
아침 식사는 간단히 해치우고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한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오늘의 일들을 살핀다.
오전에 일을 마치면 오후가 좀 편할 수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또 새로운 일이 더해진다.
조금 일에 몰두하다 보면 점심식사 시간이다.
골목 안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온다.
오후 1시부터는 업무에 좀 더 집중한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손가락으로는 부지런히 타이핑을 한다.
전화도 하고 상담도 하고 희의도 한다.
오후의 시간은 날아가듯이 빨리 지나간다.
마치 일의 머슴처럼 업무들을 처리했다.
책상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오면 하늘은 검정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어져가고 식당은 손님 맞을 준비로 부산해진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는 식구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은 사생활 보호 영역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
가끔 급한 연락이 오면 급한 대로 뛰쳐나간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 마지막 한두 시간은 그날의 숙제를 한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여 한 장의 글을 남긴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나의 하루가 꽉 맞물린 기계처럼 돌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항상 틈새가 있다.
그 틈새를 파고들어가는 힘과 지혜가 필요하다.
시간을 떼서 운동을 하고 취미생활을 하라고 말들은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너그럽지 않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따로 시간을 낼 수 없다면 한꺼번에 같이 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지혜 말이다.
출퇴근길을 그냥 길바닥만 보고 가지 않는 것이다.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틀면 책 듣는 시간이 된다.
저녁에 산책을 하고 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얼추 하루에 두 시간 가량은 책을 듣게 된다.
물론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지양한다.
가벼운 에세이와 잡다한 정보를 모은 책, 내용 전개가 잘 이어지는 소설책들이 좋다.
낮에 일을 하다가도 좀 뻐근할 것 같으면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신다.
나만의 취미와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해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커피를 언제든지 마실 수 있고, 듣고 싶은 음악을 1분 내로 찾아서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가능했다.
영조대왕이 오랫동안 식사를 못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왕이 식사를 못하니 신하들은 잔뜩 긴장하여 식욕을 돋우는 음식을 올린다고 난리였다.
그런데 그 좋은 음식들을 제치고 영조대왕이 택한 것은 고추장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고추장이 너무나 귀한 음식이었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흔한 것이 되었다.
영조 시대의 사람들이 보면 부러워 죽으려고 할 것이다.
커피는 또 어떤가?
고종황제 때나 되어서야 서양 외교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것도 중국식 음차를 우리말로 그대로 읽어서 ‘가배’라고 했다.
아무나 마실 수 없었다.
구할 수 있어야 말이지.
그때 그 귀했던 것을 지금 나는 전혀 부담 없이 즐긴다.
그 시간은 나를 귀족처럼 여기게 하는 시간이다.
나를 위한 사치의 시간이다.
하루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렇게 머슴도 되었다가 귀족도 되었다가 천태양상의 모습을 띠면서 재미있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