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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17. 2021

나를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를 따르라!” 명령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한마디에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오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면 “와!”하면서 달려가는 그런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대가 그랬던 때문일까?

텔레비전에서도 전쟁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봤기 때문일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육군 대장이라고 했다.

왜 하필 육군이었는지, 공군도 있고 해군도 있고, 특수군도 있는데 마냥 육군이었다.

대장이 어느 정도 높은 자리인지도 몰랐다.

목소리가 크고 남들보다 앞서서 뛰고 용감한 기운이 넘쳐흐르면 되는 줄 알았다.


나중에 군대에 들어가서야 대장이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알았다.

대장은 별이 4개다.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높은 자리이다.

그 밑으로 중장, 소장, 준장이 별을 단 장군들이다.

그다음 무궁화를 단 대령, 소령, 중령, 다이아몬드를 붙인 대위, 중위, 소위.

그 후에야 작대기다.

나는 하나, 둘, 셋, 넷만 그리다가 끝났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좋을 것이다.

그곳에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나눠서 쓸 것도 없고 나눠 가질 것도 없다.

온통 나 혼자만의 세상이다.

남들은 저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본다.

그 높은 곳에서 한마디 하면 저 아래서는 그 말에 따라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말도 잘 듣는다.

부탁하면 재깍재깍 다 들어준다.

눈치만 줘도 알아서 다 준비한다.

그 맛에 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오르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아래에서는 그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올라오는데 막상 위에 올라보면 아무것도 없다.

신천지가 열리는 굉장한 자리인 줄 알았는데 똑같다.

마법의 문 같은 것은 없다.

이제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갈 곳이 없다.

산 정상에 오르면 “야호!” 한 번 외친 후 내려간다.

높은 곳은 그런 곳이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아이였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거 하지 마라, 안 된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싫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빨리 어른이 되고만 싶었다.

나이 제한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아무 때나 극장에 들어가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부러웠다.

어른은 나보다 한창 위에 있었는데 어서 그 자리에 오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 그곳에 도달해 보니, 그 자리에 보통 힘든 자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리다.

말 한마디면 다 통할 줄 알았는데 말 한마디가 쉽지 않다.

말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그 말에 대한 책임도 크다.

아이 때처럼 ‘아무 말 대잔치’를 열 수가 없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면 말 한마디가 천냥의 값어치를 한다는 거다.

그러니 함부로 말하기보다 입 다무는 게 낫다.




“나를 따르라!”는 말을 외치려면 앞서가야 한다.

그런데 앞서가는 길이 편하지 않다.

뒤에서 보면 앞에 가는 사람이 훤히 보인다.

그가 똑바르게 가고 있는지 비틀거리는지, 확신에 차 있는지 아니면 불안해서 헤매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사람들이 따라가지는 않는다.

바르게 가고 있어야 그를 따라간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사람보다, 오히려 그 소리를 외치는 사람을 따라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내가 외치든 외치지 않든 나를 따라온다.

보통은 열심히 노력해서 선생이 되고 지도자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있어도 나이가 들면 저절로 선생이 되고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데 이미 나를 ‘선생’이라고 부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좋은 선생, 좋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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