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牧民心書)

by 박은석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펼쳤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언젠가 한 번 읽어야지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겨우 손에 들었다. 내용이야 책 제목처럼 지방 관청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에게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이렇게 하라는 잔소리들의 나열일 것이라 생각했다. 다산은 스물여덟 살에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노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남인 계열이었다. 고위관직에 오르기는 힘들었을 테고 고향땅 두물머리에서 자라면서 자연을 다스리는 삶을 일찌감치 체득해서였는지 실생활에 이로움을 주는 학문(實事求是)을 추구하였다. 정조대왕의 꿈꾸던 수원 화성을 세상에서 가장 멋드러진 성읍으로 만들었고, 거중기와 도르래, 바퀴 달린 달구지를 개발하여 공사 기일과 비용을 아끼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정조 대왕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정약용은 바람막이 하나 없는 벌판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당시 조선에는 중국을 통해 천주교가 조금씩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천주교 전파의 중심에 정약용의 형제들이 있었던 것이다. 조선 최초의 세례교인인 이승훈은 정약용의 매형이었고, 정약용의 형님들도 천주교를 믿고 있었다.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선포한 조정의 명에 따라 정약용의 형제들은 모두 끌려나와 국문을 당했다. 작은형 정약종은 처형받아 죽었고 정약용은 형제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천주교를 믿지 않았음이 확인되었지만 형님인 정약전과 함께 유배형을 받았다. 그렇게 정약용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무려 18년의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를 떠날 때 그의 나이 마흔 살이었으니 자신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을 만 했다.


유배지에서 그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양반이지만 죄인이기에 강진땅의 선비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대신 밑바닥 인생들은 정약용에게 쉽게 다가왔다. 아무리 유배생활 중이지만 그래도 양반이기에 서민들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아마 다산이 그들을 편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힘없는 백성들의 애환을 들으면서 다산은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리고 고대의 역사 서적들과 경전들을 살피면서 백성을 잘 다스린 군주들의 예를 수집하였다. 그래서 관리가 임금님으로부터 명을 받아 부임한 후 다시 임명을 받아 떠날 때까지 어떠한 자세로 백성들을 대해야 하는지 12단계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그리고 각 단계에는 또 그 안에 6가지 항목의 실제적인 업무와 자세들을 세세하게 제시하였다.


목민심서는 그야말로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한 마리의 양처럼 여기는 마음으로 잘 다스리고자 하는 목자의 마음을 담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에서 마음을 울리는 글자가 있다. 그것은 ‘심서(心書)’라는 글이다. 정약용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보면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에 새기는 글이라고 ‘심서(心書)’라고 지었다고 한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이가 더 이상 나랏일을 할 수 없으니 너무나 원통했을 것이다. 임금을 도와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싶었지만 유배 중인 죄인이었기에 백성들에게 말 한 마디도 함부로 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으랴. 하지만 정약용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진정 나라를 위하고, 임금을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공부하였다. 그 결과 지금껏 그 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위대한 책 [목민심서]를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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