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되느냐이다

by 박은석


이제 갓 고등학교에 들어간 딸이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다.

정확히 표현하면 딸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엄마가 고민을 많이 한다.

성향은 문과인데 문과 쪽으로는 나중에 취업이 어렵다고 하니 보내기가 저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 장차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나도 그 나이 때에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뭐가 될까 고민이 많았고 어른이 된 내 모습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래서 일기장에 잔뜩 내가 가고 싶은 학교, 가고 싶은 학과, 평생 하고 싶은 일들을 써 놓곤 했다.


그때의 일기장에 적었던 내용대로 살았느냐?

아니다.

내 실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원했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이후로의 내용들도 많이 틀어졌다.

그럼 그때의 꿈은 다 물거품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때 가졌던 꿈들을 내 삶에서 조금씩 실현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한때 작은 찻집을 운영하고 싶었던 꿈을 가졌었다.

찻집의 한 쪽 면에는 책들이 즐비하고 그 옆에 한가로운 앉아 책을 읽으면서 차를 마시는 내 모습을 그렸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찻집을 차리기는커녕 찻집에서 알바를 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찻집에서 폼잡고 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 일은 평범한 모습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찻집의 한 쪽 벽면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책들이 집 책장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매일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끓이고 책을 볼 수 있는 여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면 다시 스무 살 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꿈은 지금 어떻게 된 것일까?

믿기지 않게도 다 이루어졌다.

나는 그때의 꿈대로 살아가고 있다.

비록 내가 찻집을 차리고 사장의 자리에 앉아 있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그때 내가 바랐던 찻집의 삶을 다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꿈꿨던 것은 찻집 사장이 아니라 그런 찻집에서 지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사범대학을 가게 된 이유는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단에 올라 칠판에 잔뜩 글을 써가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생각을 했었다.

만약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면 꿈꿨던 일들을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다.

교사가 가르치기만 하면서 보내지는 않는다.

수업 못지않게 행정적인 업무를 치러야 하고 잡무에 시달리며 학생들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꿈꾸었던 교사의 모습에 잡무를 처리하는 교사는 없었다.

만약 내가 꿈꾸었던 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선생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오후 내내 잡무를 처리하다 보면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선생이 됐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학교로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게 될 것이다.




꿈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되느냐로 귀결된다.

비록 내가 교사라는 ‘무엇’은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교사의 삶이라는 ‘어떻게’는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떻게’는 긴 시간 동안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꿈은 꼭 직업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직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한 수단이다.


우리나라의 프로야구는 봄이 되면 시즌이 시작되고 가을이면 시즌이 끝난다.

그런데 겨울에는 시즌 못지않게 바쁘다.

그래서 스토브 리그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기간에 선수 재계약과 은퇴 및 방출 등의 일이 거의 처리된다.

그때가 되면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초조해진다.

왜냐하면 다음 해에 야구를 계속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노장 선수들의 꿈은 한결같다.

“돈은 상관없습니다. 야구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서 그들의 꿈을 알 수 있다.

꿈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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