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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3. 2021

글이 안 써진다고? 에잇! 모르겠다!


몇 시간째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날아다니는데 좀체로 그중의 하나를 잡기가 어렵다.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고 마음먹은 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시곗바늘이 내는 째깍째깍 소리가 마치 싹둑싹둑 끈을 자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시간의 끈이 줄어들고 있다. ‘빨리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는데’하는 조바심이 들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밤의 시간은 더욱 빨리 지난다. 자정을 넘고 새벽 한 시가 가까이 왔다. 도저히 오늘은 일을 끝낼 수 없을 것 같다. 솔직히 하루 동안 열심히 살았다. 그 보상으로 몸도 쉬게 해 줘야 한다. 그런데 내 앞에 놓인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 사실 안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누가 하라고 시킨 일도 아니다. 그냥 나 혼자서 생각하고 나 혼자서 약속하고 나 혼자서 하는 일이다. 나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체력이 떨어진 것일까? 상상력이 바닥이 난 것일까? 글거리가 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체력 짱짱하고 맨날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닌다. 글거리는 지천에 널려 있다. 적어도 이틀에 한두 권 읽어대는 책의 내용들만 추려내도 종이 한 장 뚝딱 채워 넣을 수 있다. 신변잡기로 슬슬 우스갯소리를 풀어놓을 수도 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매일 알려주는 사건 사고에다가 나의 생각을 덧입힐 수도 있다. 이 방법들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는 싫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가지를 뻗어가는 식으로 글을 쓴다면 계획 있는 글쓰기가 될 터이다. 무척 많이 고심했었지만 일단은 접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집어 든 방식은 매일 떠오르는 단상을 풀어내는 글쓰기이다.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반드시 교훈적일 것, 그리고 희망적일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배운 인생공부를 이 두 가지로 풀어내고 싶었다.




원칙을 세우는 것은 좋은데 그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때때로 이렇게 모니터만 바라보는 시간이 있다. 그러다 보면 글이 써지냐고? 아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모니터에 저절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 습관처럼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습관이 중요하냐고? 중요하다. 모든 일은 습관으로 만들어진다. 한 번에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몸은 한 번 움직였을지 모르지만 그 몸 한 번 움직이려고 마음은 수도 없이 움직였다. 움직이는 한 동작을 몸에게 입힐 때까지 마음은 움직이는 습관을 입었던 것이다. 글쓰기도 습관이다. 언제나 명 문장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소한 글이라도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면 깎이고 다듬어지고 닦여져서 찬란하게 빛이 날 때가 온다. 남해 깊숙한 곳에 있다는 보물선을 찾느라 수고할 필요 없다. 글쓰기의 습관이 보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오늘처럼 한 줄도 쓰기 어려울 때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럴 때는 우선 깊이 고민하고 무엇인가 써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고민했다고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심마니들은 안다. 자신이 산삼을 찾는 게 아니라 산이 자신에게 산삼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글쟁이도 마찬가지다. 글을 찾아 무작정 생각의 바다로 뛰어들 게 아니다. 글이 나에게 파도처럼 다가올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날이 바로 오늘과 같은 날이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은 ‘에잇! 모르겠다!’하고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 눕는 것이다. 오늘 못 쓴 글은 내일 쓰면 된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뭘! 산을 오르고 산을 헤매도 산삼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허탈할 필요까지는 없다. 산을 내려오다가 아까 못 보았던 산삼을 볼 수도 있지 않은가? 흘려보낸 시간? 그런 거 없다. 글쓰기에는 이런 시간도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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