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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좀 만들었는데 더 망가뜨리는 사람들
by
박은석
Mar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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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찾아오나 했는데 한낮의 자동차 안은 벌써 여름이다.
후끈한 열기를 식히고 숨통을 틔우려면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다.
다가올 여름에도 만만치 않은 더위가 몰려올 것 같다.
더위에는 에어컨과 냉장고가 필수다.
그것들이 없었던 시대를 생각해 보면 정말 끔찍하다.
이열치열이라면서 마음으로 더위를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였을까?
삼계탕을 끓여먹으면 더위가 가셨을까?
대야에 물을 받아서 두 발을 담그고 손에는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어이 시원하다” 하면 정말 시원했을까?
시원한 음식과 차가운 물을 먹고 마시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여름에 얼음을 구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철에 한강의 얼음을 깨서 동빙고와 서빙고라는 얼음 창고에 쌓아두었다가 그 얼음을 여름철에 조금씩 꺼내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것도 임금님이나 드셨지 나 같은 사람은 구경도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냉장고와 에어컨이 다 갖춰진 집에서 자란 세대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내 세대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집에 냉장고가 들어오던 사건(?)을 목격했다.
집안 역사상 조상들은 꿈도 못 꿨을 일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던 날이다.
그날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제는 집에서 아이스께끼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였고 냉장고 안에 머리를 집어넣어 차가운 바람을 즐기기도 했다.
에어컨은 또 어떤가?
문 활짝 열고 선풍기를 돌려도 더운 바람만 나왔다.
더워서 잠 못 이루겠다며 베개 들고 마당으로 나가고 다리 밑에 돗자리를 펴고 눕기도 했다.
그러면 조금 시원하기는 했지만 처절하게 모기와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에어컨이 있고 냉장고가 있으니 더위와 싸울 준비는 다 끝났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차가운 공기를 뿜어낼 수 있는 것은 프레온 가스라가 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버리고 다른 물체를 얼려버리는 냉매 역할을 톡톡히 한다.
프레온가스는 토마스 미즐리(Thomas Midgley, Jr.
1889~1944)라는 미국인이 발견했다.
그는 20세기 초반에 맹활약을 했는데 무려 100가지가 넘는 특허를 취득한 발명가였다.
토마스 에디슨 못지않았지만 발명왕의 타이틀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즐리는 대단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더위를 이길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차차...! 프레온가스 때문에 식겁했던 때가 기억난다.
그렇다.
오존층 파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프레온가스다.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야기했던 그 프레온가스다.
그렇다면 미즐리라는 사람을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미즐리는 분명 20세기 산업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발명가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전 지구의 환경재앙을 가속화시킨 환경 훼손가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인류는 무엇인가 만들어서 좋아하는데 그것 때문에 더 큰 재앙을 야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면서 문명이라는 것이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즐리를 추켜세울 수도 없고 미즐리를 탓할 수도 없다.
미즐리가 아니었다면 다른 인물이 그 역할을 대신했을 것이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우리는 하나는 볼 줄 알지만 둘, 셋은 보지 못한다.
좋은 것 속에 안 좋은 것이 들어 있고,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안 괜찮아질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뭘 좀 안다고,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을 모르고, 더 많은 것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심하며 사는 게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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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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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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