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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6. 2021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은 모든 것에 정의를 내리길 좋아한다.

‘그것은 이것이다’라고 명쾌하게 떨어지는 말을 들으면 ‘아하!’하며 머리를 끄덕이며 속 시원함을 느낀다.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이름만 들어도 들춰보고 싶게 한다.

정의를 무엇이라고 정의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하나씩 들춰보고 그것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고민하는 ‘사는 게 뭘까?’, ‘늙는 게 뭘까?’, ‘병드는 게 뭘까?’ ‘죽는 게 뭘까?’라는 네 가지 문제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다가 싯다르타는 불교라는 종교를 만들어냈다.

대학에서 공부한 것도 아니고 위대한 스승을 모시고 배운 것도 아니다.

그저 이름을 잘 짓고 정의를 잘 내리려고 했을 뿐인데 위대한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매일 글을 쓰는 김에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우선 나를 객관화시켜서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나 자신을 가슴속에 꼭꼭 숨겨두고 나 혼자만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았고 들키지 않으려고 하였다. 철저히 나만의 나를 간직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순간부터 ‘나’가 밖으로 삐져나왔다.

원래 주관적인 성향이 강한 ‘나’였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면서 ‘나’를 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 혼자만 보는 주관적인 시선에서 여러 사람이 들여다보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

내 안에 다른 사람들의 말이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의 글이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내가 쓴 나의 글인데 이제는 모두가 읽는 모두의 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넓고 다양한 해석으로 나의 글들이 재탄생하였다.

이처럼 글은 나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현실의 아픔을 잊게 하고 미래의 소망을 꿈꾸게 하는 작업이다.

고통 없이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한낱 미물일지라도 생명을 얻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굳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생명을 낳을 필요가 있나 회의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회의적인 생명은 없다.

모든 생명은 다 희망이고 소망이다.


유한한 인간이 제한된 세상에서 무한을 꿈꾸며 영원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생명의 탄생이다.

그 순간만큼은 창조주처럼 우리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존재처럼 보인다.

매우 흥분되는 순간이어서 모든 고통을 다 잊어버린다.

글은 종이에 연필로 그리지만, ‘작품’이라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업이다.

엄청 고통스럽다.

하지만 훗날 나의 글이 숱한 사람들에게 읽힐 것이라는 소망이 움트는 순간이다.

글은 나에게 아픔을 잊게 하고 미래의 소망을 꿈꾸게 하는 작업이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여름날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작업이다.

처음 물이 얕은 곳에서는 폴짝폴짝 뛰면서 내가 물을 밟고 지배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곧바로 물이 무릎만큼 올라오는 곳에 다다르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더 깊은 데로 가기에는 무서워서 못 간다.

그냥 제자리에 멈춘 것만 같다.

하지만 물의 힘에 이끌려 점점 깊은 데로 빨려 들어간다.

거기서는 허우적거릴 힘도 없다.

그때는 그냥 물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무서울 것 같은데 그렇게 물에 몸을 맡기면 물이 알아서 나를 여기로 저기로 데려간다.


글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서 썼고 내가 글을 지배했다.

하지만 점점 글 때문에 힘들어진다.

포기할 수도 없고 끌고 갈 수도 없다.

그러다가 몸에 힘이 빠지면 그때는 글의 큰 물살이 나를 두둥실 태우고 다닌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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