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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01. 2021

길바닥 위에서도 배울 수 있다


배우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배울 수가 없다며 자신의 인생을 푸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시간과 돈이 있고 후원해주는 사람까지 있다면 배울 기회가 훨씬 많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확률이다.

100%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여건이 주어져도 정작 본인이 배우는 데 뜻이 없다면 배울 수가 없다.

그러니까 환경이 배움을 좌우하는 게 아니다.

환경보다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우선이다.


세계 4대 성인이라 불리는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를 보면 예수와 공자는 가난한 집안 환경이었고 석가와 소크라테스는 넉넉한 집안이었다.

위대한 인물은 부유한 가정에서도 나올 수 있고 가난한 집안에서도 나올 수 있다.

결국은 그 인물의 마음이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환경을 방패막이로 삼아서 그 뒤로 숨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사회철학자인 에릭 호퍼는 다섯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충격으로 2년 뒤에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의 어머니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기적처럼 열다섯 살에 시력을 회복하였지만 3년 뒤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마친 호퍼의 수중에는 300달러만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돈을 가지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오렌지 장수로, 떠돌이 노동자로 지내는 등 도시 밑바닥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다섯 살 이후 그는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사색하기를 즐겼다.

학교의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갔다.

그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존감을 해소하려고 맹목적으로 어떤 집단을 찾으며, 그 집단의 주장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집단 동일시 현상’을 주창하였다.




에릭 호퍼는 자기 집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하였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생활도 누려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명으로 존중받는다.

그의 학교는 막노동판이었고, 오렌지 행상 트럭이었고, 부랑자들의 수용소였고, 부두 노동자들의 왁자지껄한 길바닥이었다.

그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웠고,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서 배웠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곱씹어 보았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하였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부랑자와 다름없었던 삶이기에 곁에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겠지만 그는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며 날마다 배워나갔다.

비록 하루 벌어서 하루 살아가는 고된 삶이었지만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책을 읽고 생각의 날개를 펼쳤다.




시간이 있어야 배울 수 있을까?

돈이 있어야 배울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그것들은 배움의 충분조건일 뿐이다.

하지만 배움의 길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마음만 있으면 못 배울 게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배울 것이 많은 학교이자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길바닥에 앉아 있다고 해서 배움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고개를 숙이면 바닥을 알게 되고 고개를 들면 하늘을 알게 된다.

길바닥 철학자 에릭 호퍼의 집단 동일시 현상을 응용하면 어떨까?

우리가 거대한 배움의 집단을 만들어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집단에 들어오게 하는 거다.

그러면 세상 어디에서나 글 읽는 소리가 메아리치고 길바닥 위에서도 배움을 이어가는 제2, 제3의 에릭 호퍼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올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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