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금은 뿌리를 내리는 때인지도 모른다

by 박은석

처음부터 거목이 되는 나무는 없다.

처음에는 눈에 보일 듯 말 듯 손톱만 한 씨앗 한 톨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씨앗이 땅에 심겨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줄기가 자라고 가지를 뻗어나가면서 큰 나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씨앗을 땅에 뿌리면 곧바로 싹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싹이 나올 때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


가을에 열매를 맺는 과일나무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열매 안에 씨가 있는데 다 익은 열매가 땅에 떨어져 서서히 썩어 간다.

그동안에 계절은 바뀌어 겨울이 오고 가고 또 봄이 온다.

그러나 열매가 떨어진 자리, 씨앗이 심긴 자리는 미동도 없다.

'뭐가 잘못되었나? 씨앗이 죽었나?' 생각이 들려는 때에 비로소 파릇한 새싹이 나온다.

여러 달 걸렸다.

그때까지 뭐 하느라고 이제야 싹을 틔우는지 참 게으른 씨앗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씨앗은 게으르지 않았다.

부지런히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땅 위로 고개를 내민 씨앗은 금세 자란다.

어떤 나무는 하루에 몇십 센티미터씩 자라기도 한다.

속이 단단한 나무들은 천천히 커가지만 그래도 1년에 수십 센티미터는 큰다.

하지만 나무에게 있어서 땅 위로 새싹이 고개를 내미는 일보다, 줄기가 하늘로 치솟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뻗어가는 일이다.

뿌리가 견고하게 지탱해주지 못하면 바람 한번 불 때 맥없이 쓰러지고 만다.


나무의 뿌리를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마치 맛있는 사탕을 꽉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용쓰는 아이처럼 대지를 꽉 움켜쥐고 있다.

흙에서 온갖 양분을 얻으려고 최대한 넓게 뻗어가고 깊게 파고든다.

그래서 아무리 키가 작은 나무일지라도 땅에서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

뿌리가 대지를 잡고서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무를 뽑으려면 그 줄기의 굵기보다 몇 배나 더 넓은 땅을 파내야 한다.




줄기와 가지가 하늘로 더 높이 치솟아 올라갈수록 뿌리는 땅속으로 더 깊게 내려간다.

나무를 쳐다보는 사람, 올려다보는 사람은 많지만 나무를 내려다볼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무의 생명이 뿌리에 있는데 뿌리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처절하게 애쓰는 뿌리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무를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나무를 아는 사람은 뿌리를 볼 줄 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뿌리를 본다.

씨를 뿌린 다음에 빨리 새싹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뿌리가 잘 내리기를 바란다.

속도가 더디더라도 뿌리가 뻗어가는 시간을 기다려 준다.

왜 다른 씨앗처럼 빨리 싹을 내지 않느냐며 재촉하지 않는다.

큰 나무일수록 뿌리를 내리는 시간도 길다는 사실을 인정해준다.

씨앗이 스스로 싹을 틔울 때까지 뿌리가 뻗어나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다.




사람도 나무를 닮았다.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긴 것처럼 사람 구실을 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뿌리가 땅속을 뻗어가듯이 사람도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다 끌어안으면서 속을 채워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튀어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싹도 안 나왔다며 마치 자신을 죽은 씨앗이라고 한탄하지 말자.

정말 죽은 씨앗이라면 지금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씨앗은 죽은 다음에라야 뿌리를 내리지 않는가?


땅속에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긴 만큼 더 높이 자라는 나무가 된다.

위인들이라고 해서 일평생 위대한 일을 이어간 것은 아니다.

그들도 오랫동안 뿌리를 내렸다.

충분히 뿌리를 내렸을 때 잠깐 번쩍 빛을 낸 것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는 최절정의 시간은 고작 십일 정도이다.

하지만 그 열흘을 위해 나무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뿌리를 내린다.

어쩌면 지금은 뿌리를 내리는 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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