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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오늘 하루
가장 행복한 때
by
박은석
Mar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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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집 앞에 있는 로또 판매점을 들러서 복권을 샀는데 그게 1등에 당첨이 되는 거다.
그러면 세금 떼고 내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 다 도와주고, 세상을 다 둘러보고 그리고, 그리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는 거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신데렐라처럼 백마 탄 왕자가 ‘짠!’하고 나타나서 나에게 손을 내민다면 얼마나 좋을까?
텔레비전 막장드라마보다 더 쫄깃한 인생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그래서 그들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을 맺는 거다.
그런데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왕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나중에 왕과 왕비가 되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는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행복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서 궁궐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자.
수많은 귀족들과 궁궐을 드나드는 여인들 속에서 왕자비로서 품위를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는 구할 수 있을까?
말하는 것, 밥 먹는 것, 옷 입는 것도 다 틀이 짜여 있어서 그 규정에 따라야 할 텐데 마음껏 뛰놀던 신데렐라가 그 틀에 들어가서 잘 견딜 수 있었을까?
구중궁궐 안에서 날마다 조심하고 조신하게 지내야 해야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지만 동화는 그다음의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그냥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내 버린다.
더 이상 말을 하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신데렐라가 궁궐에서 외로웠다고, 사람들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고향집에서 먹었던 가난한 날의 반찬을 먹고 싶어 하는 신데렐라를 상상해보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이다.
조선 태종대왕의 셋째아들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즐거움으로 살았던 왕자이다.
그런데 어느 날 태종대왕은 큰아들인 양녕대군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세자 자리를 빼앗아버리고 셋째아들로 세자를 삼아버렸다.
그리고 40여 일 지나서는 아예 새로운 세자에게 왕의 자리까지도 물려주었다.
그래서 왕으로 등극한 이가 바로 세종대왕 이도(李祹)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인생역전극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크나큰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세종대왕 자신은 행복했을까?
아무리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하루 3번 5시간이나 신하들과 공부하고, 네댓 시간 정사를 돌보고, 아침저녁으로 궁궐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자기 관리를 해야만 했다.
왕이 되어서 마냥 편했냐고?
그런 거 아니다.
주변 나라들 눈치 보고, 궁궐 어른들 눈치 보고, 신하들 눈치 보고, 백성들 눈치를 봐야만 했다.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눕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의 장인 장모는 내 딸이 왕자에게 시집갔다며 좋아했을 것이다.
몇 년 후에는 그 딸이 세자빈이 되었다니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왕비가 되었다는 소식이 또 날아왔다.
행복 위에 행복이 쌓이는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그런데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상왕인 태종대왕은 세종의 장인이 갑자기 교만해졌다는 말을 듣고서는 그에게 반역죄를 씌워서 처형시켜버렸다.
왕이 되어서도 자기 처가 식구들을 지키지 못한 못난 사람 세종의 괴로움은 얼마나 컸을까?
‘왕자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친정식구들이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소헌왕후의 가슴을 평생 후벼 팠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는 어렸을 때 부모형제와 다 같이 한집에 살던 때였던 것 같아.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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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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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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