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Cross, No Crown! 기독교 문화에서 십자가의 고난이 없으면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다.
고난과 고통 없이 쟁취할 수 있는 영광은 없다.
어떤 일이든지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구중궁궐에서 태어난 왕자들은 평생 흙 한 번 안 묻혀볼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달고 나왔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도 가만두지 않는다.
거센 풍랑이 몰아칠 때면 오히려 왕자의 신분이 불편해진다.
자기 손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가 더욱 어렵다.
왕자이기 때문에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때, 그들은 하늘을 향해서 얼마나 원망을 했을까?
차라리 민초의 자식으로 태어나 못 입고 못 먹더라도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속에 왕관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그 왕관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머리에 왕관을 쓰면 그 왕관의 무게를 버텨내야 한다.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면 차라리 왕관을 쓰지 않는 게 낫다.
왕이라고 매일 잔치를 벌이며 먹고 마시지는 않는다.
체력이 약하면 안 되고 문력이 약해서도 안 된다.
훌륭한 임금이었다고 하는 세종이나 정조 임금은 웬만한 문신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였고 어지간한 무신들보다 더 활쏘기를 잘했다.
평상시에는 학자로서, 유사시에는 군통수권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아무리 산해진미를 먹고 제 때에 보약을 달여 먹는다 해도 과중한 업무와 심한 고민을 견뎌내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왕들은 대부분 단명하는지도 모르겠다.
조선 500년 동안 27명의 왕이 통치했다니까 평균으로 치면 왕 통치 기간이 20년도 안 된다.
왕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편안하고 탈이 없는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실수하면 더 잘 되는 인생, 뒤로 넘어져도 꿀통에 빠지는 삶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이다.
하지만 편안하다 편안하다 할 때 위기가 찾아온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대대로 우리가 일본에 문화를 전해주었고 그들이 까불면 혼내주곤 했다.
조선 초기에만 해도 일본은 혼쭐이 났다.
하지만 나라가 안정되고 평화의 시기가 200년 동안 지속되다 보니까 조선은 전쟁을 치를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막아낼 수 있는 재간이 없었다.
임진왜란의 참상이 왜 비극적이었는지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그렇게 꼬집었다.
평상시에 고통을 겪지 않으니까 위기의 순간에 버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뼈아픈 충고인지 모른다.
그는 400년 전에 살다 갔지만 그의 말은 지금도 우리의 심장을 찌른다.
최근 한류 열풍이 전 세계에 불고 있다.
저 강력한 문화 콘텐츠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른 데서 온 것이 아니다.
숱한 고통과 고난의 시간들이 빚어낸 것들이다.
한 맺힌 순간들이 영글고 영글어서 보석이 만들어진 것이다.
왕관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눈물과 땀과 피가 섞어서 빚어내는 것이다.
그 사실도 모르면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거대한 국가를 맡을 수는 없으니까 작은 회사에서라도 왕 자리를 만든다.
그것도 안 되면 집에서라도 왕으로 대접받으려고 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왕관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가?”
“왕관을 얻기 위해서, 왕관을 지키기 위해서 고통을 견디고 있는가?”
만약 이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면 왕관을 내려놓는 게 낫다.
아예 왕관을 쓰지 않는 게 낫다.
그것이 자신도 편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도 편하다.
No Cross, No Crow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