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의 인생

by 박은석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헬렌 켈러의 <단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말에 내 상상을 덧붙여본다.

설마 지금 당장 그러지는 않겠지만 만약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뿐이라면 그 하루를 어떻게 살까?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부터 매 시간, 아니 모든 분과 초가 가슴 절절이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돌아가는 시침과 분침, 초침을 붙들어두고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고두현 시인은 <별에게 묻다>라는 시에서 “천왕성에선 평생 낮과 밤을 한 번밖에 못 본다.

마흔두 해 동안 빛이 계속되고 마흔두 해 동안은 또 어둠이 계속된다.

그곳에선 하루가 일생이다.”라고 노래했다.

천왕성에서는 낮과 밤이 한 번 바뀌어 하루가 지나는 데 84년이 흘러간다.

우리의 평균수명이 80년 정도 되는데 만약 천왕성에서 산다면 딱 하루 정도 살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천왕성에서는 우리도 하루살이 인생이다.




천왕성에서는 일생 동안 밤하늘의 별을 딱 한 번밖에 볼 수가 없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별이라면 그 별을 바라보는 밤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지구에서 스물네 시간의 주기로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는 숱하게 많은 낮과 밤을 지내왔다.

지금까지 지내온 밤이 몇 밤인지 셀 수도 없다.

그렇게 많이 봐 왔기에 낮과 밤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살면서 낮이 오기를 기다렸던 때가, 밤이 오기를 기다렸던 때가 있기나 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곧 낮이 지나 밤이 되고 또 밤이 지나 낮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삶에서 낮과 밤이 딱 한 번씩만 주어진다면 그 낮과 밤을 쉽게 보낼 수가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낮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태양을 남쪽 하늘에 붙들어두려고 하고, 밤이 계속 머물게 하도록 달과 별을 하늘에 매달아 두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알퐁스 도데는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의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한 가지의 조건이 추가되었을 뿐이데 일상이 그냥 일상이 아닌 특별한 날이 되었다.

인정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일들은 사실 우리 인생에서 딱 한 번 맞이하는 일들이다.

그 한 번의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그 일을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순간순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가볍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말 한마디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고 행동거지 하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딱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인생을 선물로 받았다.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누가 더 좋은 인생인지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 사람도 한 번의 인생, 나도 한 번의 인생이다.

내가 그의 인생을 대신 살 수도 없지만 또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해서 더 좋은 것도 아니다.

나에게 딱 맞는 인생은 오직 나의 인생뿐이다.

그런데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늘 새로운 날들이 펼쳐지는데, 그날을 걸어가는 나는, 길 모르는 나그네처럼, 운전대 처음 잡은 초보자처럼 모든 것이 낯설다.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하면서 큰소리칠 수가 없다.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다.

“인생은 말이야”라고 정의 내릴 수도 없다.

아직 한 번도 인생의 끝에 도달해본 적이 없다.

그저 처음처럼, 딱 한 번인 것처럼 조심스럽고 간절하게 그날그날을 살아갈 뿐이다.

딱 한 번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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