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 실험을 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아기들과 엄마들 사이에 가림막이 쳐 있었다.
가림막 저쪽에서 아기들이 울어대는데 엄마들이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자기 아기를 찾는 실험이었다.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의아해하였다.
‘못 찾으면 낭패일 텐데 더군다나 방송으로 중계되니까 부끄러워서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에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이 엄마들은 아기 울음소리만 듣고서도 척 척 자신의 아이를 찾아냈다.
참 신기했다.
내가 듣기에는 모든 아기들이 다 “응애”할 뿐이었는데 어떻게 그 여러 아기들 틈바구니 속에서 자기 아기를 찾아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녹화방송이니까 방송국에서 서로 짜서 편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졌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아기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한 결 같이 그걸 왜 모르느냐며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어디 울음소리뿐이겠는가?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아기들을 보면 이 아기가 저 아기 같다.
그래서 아기 바구니에, 손목 발목에 이름표를 붙여놓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들은 이름표를 보지 않아도 저 아기가 자기 아기라고 한눈에 알아본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재판에 나왔던 진짜 아기 엄마는 자기가 잠든 사이에 이웃 여자가 아기를 바꿔치기한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자기 품에 있던 죽은 아기는 자기 아기가 아니었고 자기 아기는 이웃 여자의 품에 안겨 있는 게 대번에 보였던 것이다.
아마 아빠들이었어도 그렇게 알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이나 질문은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엄마들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엄마가 자기 아기를 알아보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수학적 확률로 맞힐 수 있을까?
여러 사람이 다양한 시도들을 해 보았겠지만 사랑의 힘이라고밖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사랑하면 울음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단순하게 내 아이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저 울음소리가 배가 고프다는 것인지, 잠자고 싶다는 것인지,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것인지도 분별한다.
엄마들이 청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아기와 무슨 텔레파시가 통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랑하면 알 수 있다.
사랑하면 관심이 가고 사랑하면 자세히 귀를 기울이게 되고 사랑하면 이해하게 된다.
사랑하면 다 해석이 된다.
한 사람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아니다.
바로 엄마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다 위대하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들의 그 위대함이란 자기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기가 없었더라면 평범한 한 사람의 여성이었을 텐데 아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기를 키우지만 또한 아기가 엄마를 키운다.
사랑으로!
온 세상이 아우성이다.
저마다 소리를 내고 있어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요구사항도 많아서 어느 것부터 손을 봐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
아무도 자기의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서러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랑이 있으면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벌써 어디에다 팔아먹었나 보다.
그리고 두 귀에다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아놓았는지 자기 혼자만 싱글벙글거리며 자기 말만 한다.
이러다가 자기 아기의 울음소리조차도 듣지 못할까 걱정이다.
듣지 못하면 크지도 못한다.
이 시대에 위인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사람들이 울음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시끄럽다고 귀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키워내지도 못하고 또 자신도 더 이상 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귀가 필요하다.
사랑의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엄마의 귀가 있어야 한다.
그 소중한 귀를 막아버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