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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06. 2021

부끄러운 줄 알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생각 없이 말을 내뿜는 이들이 너무 많다.

지금이 어떤 때라고 아직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남이 쓴 글을 마치 자기 글인 양 가져다 쓰는 글 도둑도 있다.

같이 연구하였으면서도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의 이름은 쏙 빼고 마치 자기가 모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발표하는 사기꾼도 있다.

오래전에는 그러려니 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대통령이 직접 쓰겠나? 비서들이 초안을 잡고 대통령이 고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넘어갔다.

오히려 아랫사람의 업적을 상사가 가져다 쓰면 상사에게 채택된 것이라며 좋아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결국 나중에는 그들이 줄을 세우고 밀어준다는 말도 해댔다.

거짓말이다.

사람이 솔직해야 한다.

도둑질을 하고서는 원래부터 자기 것이라고 떠벌려서는 안 된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 부끄러움을 상실한 이들이 너무 많다.




대학 졸업 논문에는 ‘채만식의 <탁류>에서 보이는 통과의례에 대한 연구’ 비스끄리한 제목을 붙였다.

4학년 2학기의 근 두 달을 학교 전산실에서 타이핑을 하며 보냈다.

덕분에 <탁류>에 대한 논문들은 많이 읽었다.

하지만 내 글은 그야말로 짜깁기를 해서 페이지를 맞추는 정도였다.

심사는 통과되었지만 어디 자랑할 수가 없었다.

책 제목처럼 뭔가 탁한 것이 남았다.


대학원에서는 개화기에 기독교의 사회봉사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역시나 기존의 자료들을 정리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통과되었다.

당시에는 그랬다.

석사 논문은 틀만 잘 갖추면 된다고 했다.

아마 교수님들도 대충 형식만 맞으면 통과시켜주셨던 것 같다.

언젠가 아는 분이 내 논문을 참고해도 괜찮겠냐며 허락을 구하였다.

물론 괜찮다고 대답을 하였지만 부끄러웠다.

온전히 나의 생각으로 일궈진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나와 비슷한 연배의 유명인이 석사 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때는 다들 그랬는데 왜 10년도 더 지난 일을 가지고 와서 지금의 잣대로 평가를 하느냐고 속에서 부글거렸다.

그러나 내 양심도 자유롭지는 못했다.

거짓은 시간이 지나도 거짓이고 도둑질은 시간이 지나도 도둑질이다.

상황에 따라서 도둑질도 그때는 괜찮은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신 박완서 선생은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소설로 남긴 대단한 분이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때까지 자신의 인생을 소설화시켰다.

그분 가족이 한국전쟁 중에 피난 가다가 서울에서 발이 묶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올케언니와 함께 빈집에 들어가서 쌀을 훔쳤다고 고백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었지만 상황 때문에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을 변명하지 않았다.

그분은 그랬던 자신을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말 한마디 글 한 줄도 시간이 지나서 그 사실 여부를 따지는데 삶의 한 자락인들 오죽할까?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라는 안일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보이고 있고 기록되고 있다.

길거리 높은 곳에 숨어 있는 CCTV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다.

호주머니 속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내가 다닌 길의 위치를 다 기록하고 있다.

내 양심에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을 다 새기고 있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땅이 올려다보고 있다.

어디서 숨기고 누구에게 속일 수 있겠는가?

다 알고 있다.

다 안다.

다 알게 될 것이다.


21세기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는 질문이 많이 있었다.

21세기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것 정도는 달라지겠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부끄러운 줄 알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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