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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15. 2021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위대하다


어지간한 일은 내 손으로 처리한다.

집에서 무엇인가 고장 난 물건이 있으면 일단 공구상자를 꺼내고 이놈을 어떻게 요리할까 바라본다.

식구들은 수리기사를 불러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고칠 수 있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고칠 수 있으면 좋고 못 고치면 그때 수리기사를 부르면 된다.


복잡한 전자회로판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뜯어보면 망가진 부분이 보인다.

전선이 끊겼다든지 부품이 녹슬었다든지 연결 부위가 풀어지거나 뭐가 막혀 있다.

컴퓨터 같은 경우는 먼지가 쌓여서 열과 소음이 나기도 한다.

먼지만 없애줘도 확 달라진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것은 밸브 안쪽에 고무 패킹이 낡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변기 같은 경우는 바닥에 살짝 발라놓은 시멘트를 깨면 번쩍 떼어낼 수 있다.

에어컨은 스팀분사기로 어느 정도 청소할 수 있다.




자동차같이 정말로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경우는 상황이 좀 복잡하다.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고 있으니까 서비스받아야 할 것은 받아야 한다.

괜히 내 손에 기름 묻힐 필요는 없다.

보험 처리가 안 되는 자잘한 것들만 하면 된다.

에어필터나 전구를 교체하는 정도만 한다.

요즘은 DIY라는 명칭도 붙었다.

‘자가수리’라는 검색어를 사용하면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따라 해보면 된다.

분해할 때 사진을 찍어두면 좋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


하지만 뜯어고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도 새로운 일에는 살짝 두려움이 몰려온다.

특히 사람을 상대로 해야 하는 일은 더욱 조심스럽다.

무슨 물건을 뜯어고치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고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지 경우에 따라 다 다르다.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가는 더 복잡하게 꼬여버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뿐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에도 엄두가 나지 않을 때들이 있다.

“인생이란 말이야...”로 시작되는 일들이다.

가볍게 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애쓰고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비스센터에 연락할 수도 없고 전문가를 구할 수도 없다.

인생 전문가?

그런 사람 없다.

일이 안 풀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내버려 두어도 뭔가 망가지고 고장이 난다.


집안에 가만히 있다고 해서 시간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이 가만히 있지도 않는다.

손톱 발톱이 자라고 머리카락도 자란다.

더 시간이 지나면 머리도 하얗게 되고 이빨도 빠진다.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자기들이 알아서 저절로 낡아지고 망가진다.

내 힘으로 어떻게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다.

고치려고 해도 고칠 수가 없다.

그렇게 끙끙거리다가 결국은 두 손을 들고 만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도 이 싸움에 도전을 했었다.

오만 생각을 하면서 인생이 무엇일까 풀어보려고 했다.

결과는 그렇게나 똑똑한 사람인데 풀지 못했다.

자기 생각들을 모아서 책 한 권 쓰려고 했는데 그것도 못했다.

그가 떠난 후에 가족들이 그의 메모들을 모아서 책을 냈다.

제목 붙이기도 애매해서 ‘파스칼 씨의 생각들’이라고 했다.

프랑스 말로 <팡세(Pensées)>이다.


인생이 얼마나 복잡하고 풀기 어렵냐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지구가 달라졌을 거라나?

설마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가 코 큰 것 보고 그녀를 좋아했을까?

코가 얼마나 크길래?

이래도 안 풀리고 저래도 안 풀리니까 인간은 갈대라나?

아무짝에도 쓸데없고 곧 있다가 사라질 존재라는 거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놀라운 것이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거다.

아무것도 고칠 수 없어도 괜찮다.

생각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은 위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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