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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10. 2021

저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을 거냐?


서점에 가본 지 한 달은 지났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보면 또 사고 싶으니까 아예 보지 않으려는 미연의 방지책이다.

한동안 집을 도서관으로 꾸미려던 생각도 있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러면 멋져 보이고 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생각이었다.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은 아이들이 크면서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장 위쪽에 꽂아놓곤 했다.

누군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줬는데 자기 집에 책이 많았는데 부모님이 책장 높은 곳에 있는 책은 중학생이 돼야 읽을 수 있다며 제약을 두셨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빨리 중학생이 되어서 저 높은 곳에 있는 책을 다 읽어버릴 거야!’라고 별렀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중학생이 되자 감격에 겨워 책장 윗간의 책들을 탐독했다고 했다.

그 방법이 좋겠다는 생각에 나도 따라 했다.

그런데 대상이 되는 사람이 다른 탓일까?

아이들은 내 마음과 달랐다.




책장 윗간의 책들은 오랜 시간에 색이 바래고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아이들은 내 취향의 책은 본 척 만 척이었고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한 권씩 구입했다.

좁은 집에 책은 많으니 결국 정리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요시모토 바나나, 귀욤 미소, 아멜리 노통브, 파트리크 쥐스킨트, 알랭 드 보통, 무라카미 하루키, 파울로 코엘료들을 떠나보냈다.

빛바랜 채로 꽂혀 있는 것보다 아직 박수치는 이가 있을 때 떠나는 게 나아 보였다.

아이들이 언젠가 그들을 다시 찾을 텐데 그때 아쉬워하는 마음을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걸러내도 걸러지지 않는 책들이 있다.

오히려 기회가 되면 더 구입한다.

고전, 역사, 문화예술 관련 책들이다.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다.

특히 <올재> 출판사에서 출간 소식이 들리면 득달같이 달려간다.

엄선해서 절판된 책 5천 권만 찍어내기 때문이다.




책을 구입할 때는 항상 횡재한 기분이 든다.

보고 싶은 책을 골라서 내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내 아이들은 모른다.

그런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기분이다.

서점도 보기 힘들었고 도서관 출입도 낯설었던 때도 있었다.

도시에서는 리어카에, 트럭에 삼중당문고 같은 책들을 가득 싣고 와서 빌려주는 장사꾼도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가뭄에 콩 나듯이 듬성듬성 들르는 월부책장수 아저씨가 고작이었다.

이번에 책을 사 준다면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사정하고 조르고 눈물도 몇 방울 흘리면 아버지는 책장수를 부르셨다.

그렇게 해서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과학전집 같은 책들이 우리 집에 들어왔다.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틈이 날 때마다 한 권씩 읽어갔었다.

우리 집에 책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친구들이 한 권씩 빌려갔다.

그리고 한 번 집 나간 책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니 ‘나는 언제 읽을 건데?’라며 묻고 있는 것 같다.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며 달래왔던 책들도 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다짐을 하고 몇 페이지 넘기다가 다시 꽂아둔 책들도 있다.

큰맘 먹고 올해는 꼭 읽겠다며 큰소리쳤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권만 읽다가 말았다.

스완네 집으로 가는 길이 나에게는 그만큼 멀고 멀었다.

책상 위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몇 달째 놓여 있다.

하루 동안의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1년이 걸릴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전자책과 책 읽어주는 어플의 발전으로 더더욱 종이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림잡아도 내가 안 읽은 책이 족히 100권은 되는 것 같다.

내 마음에서 또 ‘저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을 거냐?’라는 소리가 들린다.

“읽을 거다. 읽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 일단은 큰소리로 입막음을 해놨다.

다 읽어버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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