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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03. 2021

내 인생을 걸만한 일

   

내 인생을 걸만한 일이 무엇일까?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특별한 일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 거대한 일을 이루기 위한 중간 단계의 일이니까 여기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면 안 된다.

그런데 막상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일단 이 일이 끝난 다음에 생각하자고 마음먹는다.

현대인들 대다수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자기가 나고 자란 곳에서 살다가 갔으니까 아버지의 삶이 아들의 삶이 되었고 어머니의 삶이 딸의 삶이 되었다.

조상들의 모습을 복사해서 그대로 갖다 붙이면 되었다.

잘 모르겠으면 웃어른에게 물어보면 되었다.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살았고 어른들이 시키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그게 가장 좋은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기도 원치 않는다.

부모도 자신의 삶을 자기 자녀가 베껴서 살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개척을 해 나가야 한다.


그게 그러니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노래를 부르던 때였던 것 같다.

그 말이 듣기에 너무 좋았다.

내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이제 자유를 찾았고 해방을 맞이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맘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자유를 만끽하는 것보다 어딘가에 구속되어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이 사실을 먼저 깨닫고 고상한 말들로 잘 치장하여 책을 낸 사람이 있다.

에리히 프롬이다.

책 제목도 알쏭달쏭하게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지었다.

그는 인간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신을 묶고 있는 삶에서 뛰쳐나가는데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 자유가 두려워서 다시 자신을 묶어줄 삶으로 뛰어간다고 하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자유에게로 도피하고 또 자유로부터 도피하면서 한세상을 산다.


강 이편에 서 있으면 강 저편이 좋아 보이고 강 저편으로 가면 이편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저편의 삶을 살기 위해서 인생을 걸었는데 막상 저편으로 갔더니 그곳도 별것 아니었다.

오히려 이편의 삶에 인생을 거는 게 더 나아 보인다.

그러면 그 순간에 자신이 인생을 너무 허비한 것처럼 여겨진다.

헛살았다는 말이 푸념처럼 터져 나온다.

허구한 날 “차라리, 차라리”만 중얼거린다.

그랬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 인생을 걸만한 일이 무엇일까?

애당초 그런 특별한 일은 없다.

남들은 별 볼 일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일에 인생을 걸면 그 일이 특별한 일이 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은 나도 웬만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전문가이고 나는 비전문가라고 한다.

그들과 나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들은 그 일에 인생을 걸었고 나는 그 일을 사소하게 여긴 것이다.

딱 그만큼인데 그것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세상에 사소한 일이란 없다.

풀 한 포기 잘 살피면 풀 전문가가 되고 돌멩이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돌 전문가가 된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라고 숨 쉬는 것을 하찮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밥 한 숟갈 뜨는 것도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일이다.

내 인생을 걸만한 일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인생을 걸만한 일이다.

내가 하는 그 일이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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