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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20. 2021

만약 내가...

'만약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그다음은 무엇이라고 쓸까?  

'만약 내가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만약 내가 공부를 잘했다면...',

'만약 내가 몸이 더 건강했다면...'과 같은 내용으로 채워갈 것이다.

너무 속물근성이 아니냐고?

어쩔 수 없다.

내 속 깊은 데서부터 올라오는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벌써 '만약'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나에게 이미 있는 것은 제쳐두고 나에게 없는 것에 눈을 돌린다.


그것이  내 손에 쥐어진다면 내가 정말 달라질까?

글쎄다.

분명 없는 것보다 훨씬 좋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확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된다면 그 상황을 또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또 없는 것이 무엇인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속상해하고 아쉬워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때라고 다를 것 같지 않다.

사람의 본성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1800년대 중반에 살았던 미국 여성 에밀리 디킨슨은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대학을 설립했고 아버지는 정치인이었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학교교육도 많이 받았다.

여러 지역을 여행했고 사회 저명인사들과도 교분이 깊었다.

1,700편이 넘는 시를 쓸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계속 솟아올랐던 여성이었다.

독신이었고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살다가 그 집에서 숨을 거뒀다.

아쉬울 게 없는 삶이었고 부러운 삶이었다.

그런데 그녀도 '만약 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 제목의 시를 남긴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심장이 미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이 아니리라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다면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지친 새 한 마리 둥지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이 아니리라"




똑같이 '만약'으로 말을 시작했는데 어쩜 이렇게 나와 다를까?

나는 나에게 초점을 맞췄는데 에밀리 디킨슨은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에게, 누군가에게, 지친 새 한 마리에게 초점을 맞췄다.

이 작은 차이가 사람의 수준 차이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세기를 넘어서 여전히 칭송을 받는 시인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나'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따라서 '만약에 내가 한 사람을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지친 새를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면 대뜸 '어휴! 손해가 많을 텐데.'라는 마음이 든다.


그래도 그녀의 글이 머릿속에 맴돈다.

자세히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을 말한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의 심장이 미어지지 않도록 마음 아프게 하지 않으면 된다.

아파하는 사람 옆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아픔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지친 새를 냉큼 잡아오지 말고 살 수 있도록 날려 보내주면 된다.

어렵지 않다.




인생 헛살았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었지만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 정도면 된 것 같은데 그들은 여전히 '만약에, 만약에'를 조아리는 것 같다.

헛된 삶이 될 게 뻔하다.

헛된 삶이 되지 않으려면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삶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서 그 누군가를 빼버리면 나의 삶도 이지러지고 망가지고 만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슬픔을 달래줄 수 있는 일은 또 뭐가 있을까?

어려운 일들을 끄집어오지 말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생각해 보자.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남 좋은 일, 그 일을 한번 해 보자.

이제 생각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만약 내가...' 

그다음을 무슨 말로 채워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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