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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7. 2021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아는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군대 간 아들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벌써 제대했다고 한다.

‘요즘 군대는 입대하면 전역인가?’ 왜 이렇게 빨리 제대했냐고 다시 물었더니 개월 수 꽉 채워서 만기 전역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데 그동안에 봄여름가을겨울이 두 번 가까이 바뀌었다.

세월 참 빠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군복무 중이었던 그 아들에게는 시간이 지긋지긋하게도 느리게 갔을 것이다.

국가대표 축구경기에서 우리가 한 점 차이로 지고 있을 때는 45분이 금방 지난다.

내 시계로는 아직 몇 초 남았는데 심판이 서둘러 호각을 불어서 경기를 끝내는 것 같다.

반면에 우리가 이기고 있을 때는 45분이 지나도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심판이 호각을 불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심판의 시간과 내 시간은 다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정말 상황에 따라서 시간이 다른지 학자들이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발표했는데 높은 산 위에서의 시간과 바닷가에서의 시간이 다르다고 발표했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카를로 로벨리가 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에 보면 나와 있다.

모든 물체는 자기 주위의 시간을 느리게 흐르도록 만든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물의 중심에 가까운 곳이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이다.


우리 지구의 중심은 땅속 어디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 중심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지표면의 바닷가의 시간이 땅속에서 멀리 있는 산꼭대기보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이다.

산에서 살면 자신도 모르게 시간이 빨리 가니까 빨리 늙는다는 것이고 바닷가에서 살면 천천히 늙는다는 말이다.

나이 들면 산에 들어가서 살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이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지 고민이다.

더 빨리 늙는다는데...




지표면에서 높은 곳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면 아파트 1층의 시간이 꼭대기 층의 시간보다 느리게 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높은 층에 사는 사람일수록 더 바삐 움직이고 낮은 층에 사는 사람일수록 상대적으로 더 여유 있어 보인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시간인데 그렇다면 집값도 낮은 층이 더 비싸야 하지 않을까?


사람을 만날 때도 시간이 다르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시간이 무척 빨리 간다.

몇 마디 얘기도 안 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간 거야?”라며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한다.

반면에 불편한 사람을 만날 때는 시간이 지지리도 안 간다.

딱 멈춰버린 것 같다.

어떤 때일까?

결혼 승낙을 받으려고 여자 친구의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이 그럴 것이다.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하시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다.

시계를 보면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마치 몇 번 죽었다가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영어권에서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작가로 추앙받는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글을 적어달라고 했다.

우리 나이로 95세를 살았으니 그는 꽤 장수하셨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간이 후딱 지나갔나 보다.

그의 노벨상 수상 작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묘비 글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시간 때문에 더 유명해졌을지도 모른다.


머뭇거리면서, 이것저것 재면서 보낸 시간이 너무 많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죽이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뭘 해야지?’ 생각하느라 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려고 바닷가에 집 얻어서 살 수도 없는데 어떡하나?

강박감과 함께 머리가 아파온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버나드 쇼처럼 살자.

우물쭈물하면서 말이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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