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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1. 2021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90세가 다 되신 어느 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무릎이 약해지셔서 3층 빌라의 계단을 오르내리기 조금 힘들어하셨다.

어쩔 수 없이 지팡이도 하나 장만하셔서 손가방에 넣고 다니신다.

그래도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셔서 억척스럽게 잘 견디신다.

무릎 건강 상태가 어떠시냐고 여쭈었더니 마침 다음날 병원에 가신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검사받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누가 모시고 가냐고 다시 여쭈었다.

그랬더니 혼자 가신다고 했다.


그날에도 큰아들이 찾아왔었는데 병원 가신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병원도 가까이 있어서 택시도 부르면 오고 5분도 안 걸린다고 혼자 가시는 게 편하다고 하셨다.

“에구. 자제분들에게 걱정 끼치기 싫으셔서 그러시군요?”

“그럼요. 나 때문에 자식들에게 짐 지우기도 싫어요. 이 정도는 혼자서 할 수 있어요.”

자식들을 향한 부모님들의 마음은 똑같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사랑도 그렇게 흘러내린다.

아무리 사랑을 올려 보내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은 그 양도 질도 다르다.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부모님이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으니까 그 사랑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간혹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유명세를 타고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의 가족에 대한 인터뷰가 방송을 탄다.

부모는 자식이 자랑스럽고 이것저것 다 사주고 도와줬다고 좋아하신다.

하지만 너무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없다면서 살짝 서운한 감정을 비치신다.

자식이 미혼인 경우에는 그 애처로운 마음이 절절 묻어난다.

옆에서 신경 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걱정 한 보따리다.

자식은 괜찮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서 자신을 그토록 생각해주는 존재는 부모님밖에 없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미래의 세상을 그려본 소설이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조성하였다.

사람들은 그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되어 태어난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지도 않는다.

불평등이니 차별이니 같은 부정적인 말들도 없다.

이미 사라져버린 말들이다.

기분이 조금 안 좋으면 약 한 알만 먹으면 된다.

지상낙원 같은 정말 멋진 세상이다.


그런데 그 신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이다.

그 세계에서는 불완전한 인간의 몸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보다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도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길러진다.

정해놓은 대로 교육을 받고 집을 배정받고 일터와 집으로 보내진다.

부모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부모 없는 세상에는 사랑도 없다.




우리는 부모를 통해서 사랑을 알게 된다.

사랑의 감정은 어떤 것인지,

사랑은 어떻게 베푸는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사랑의 아픔은 얼마나 큰 슬픔인지,

사랑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우리는 부모로부터 배운다.

그래서 부모가 없으면 사랑이 없다.


왜 부모를 잃은 사람을 고아(孤兒)라고 부르겠는가?

부모를 잃는 순간 사랑도 잃어서 철저하게 외로운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말씀들을 나누는 중에 그 할머니는 전에는 병원에서 주사도 놔주곤 했는데 요즘은 약만 준다며 섭섭해하셨다.

주사를 맞아야 더 힘을 내고 자식들 앞에서 약한 모습 안 보이게 될 줄 아셨던 것이다.

“할머니! 전에는 주사를 맞아야 될 만큼 몸이 약하셨던 거고요, 지금은 주사를 안 맞아도 될 만큼 건강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약만 주는 거예요. 건강하게 건강하게 지내세요.”

그렇게 인사드리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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