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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3. 2021

희망도 부활도 다가오고 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동료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나 그렇지만 처음에는 업무 얘기, 사람 얘기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두 마디 끝나면 그다음에는 요즘 세상이 왜 이래라는 식이다.

정치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경제 이야기도 단골로 낀다.

하기는 정치와 경제는 우리 삶에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으니까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다.


따뜻했던 커피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던 김이 다 사라지고 온기가 다 빠져나갈 즈음이면 우리의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걱정으로 메워진다.

그런데 미래를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이들은 ‘만약 내가 어른이 되면...’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가득한데 내 나이쯤 되면 앞날이 캄캄해진다.

기대감은커녕 암울한 생각만 떠오른다.

환경은 피폐해질 테고 온갖 전염병과 싸워야 하고, 일자리도 없어지고, 사람들 사이에 갈등도 심해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80억의 인구가 살아가는 이 지구가 불안하다.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으로 지난 20세기에는 희망적인 생각이 있었다.

질병을 정복하고 가난과 기아를 해결하고 인류 평등의 가치관을 심어주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인류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오히려 옛날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먹을 것이 없어 조금 굶주리더라도, 입을 옷이 부족해서 추위에 떨었을지라도, 항생제가 없어서 자주 아팠더라도 그때는 정이 있고 사랑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착각이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불안했고, 입을 것이 없어서 고통스러웠고, 항생제가 없어서 사소한 질병에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정과 사랑이 있었던 것 같지만 살기 위해서 남을 짓밟고 몰아세웠다.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세상이었다.

모양만 다를 뿐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때도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말들을 했다.

세상 말세라고 했다.

미래의 희망 같은 말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인간은 살면 살수록 세상을 더 파괴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다.

120년 전 암울한 사회 속에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그랬다.


“어느 비좁은 장소에 모여 사는 수십만에 달하는 인간들은 불만스러운 그 땅을 어떻게든 흉물스럽게 바꾸려 애쓰고, 그곳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도록 포석을 깔기도 하고, 틈새를 비집고 자라나는 풀을 깨끗이 제거하기도 하고, 석탄과 석유로 그을리기도 하고, 나무를 베어 버리고 또 짐승들과 새들을 모두 내쫓아버리기도 하지만, 도시에서도 봄은 역시 봄이었다.


열린책들 출판사에 펴낸 이대우 번역본 톨스토이 <부활>의 첫 문장이다.

세계적인 대문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았다.




톨스토이는 19세기 혁명의 시대, 개발의 시대를 살았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었다.

공장 굴뚝마다 뿜어져 나오는 석탄 연기로 온 도시가 시커멓게 변했다.

많은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산을 허물고 수풀을 없앴다.

높은 나무 대신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서 도시는 잿빛 벽이 되었다.

짐승들도 새들도 모두 도망가 버린 죽음의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희망이 있을까? 톨스토이는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냐고 물었다면

"봄이 찾아오니까요."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무를 싸그리 잘라버리고 풀을 다 뽑아버렸다고 해서 봄이 멈칫거리지는 않는다.

우리의 생각이나 심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봄은 우리 곁에 온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걱정 마라. 암울해 보이지만 다시 부활한다.”라고 알려준다.


미래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처럼 희망도 부활도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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