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씨가 부쩍 더워졌다.
한낮에 잠깐 사무실 밖에 나가 있었는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직 오월인데 벌써부터 기온이 이렇게 올라간다면 칠팔월 한여름에는 정말로 무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집에 와서 찬물에 샤워를 하고서도 몸의 열기가 다 빠져나가지 않았다.
‘하루 동안에 내가 열 받았던 일이 뭐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게 없다.
그냥 날씨가 더워서 땀이 나는 것이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땀을 흘리는 것은 몸을 위해서 좋은 현상이다.
물론 과도하게 땀이 많이 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외부 온도 때문이든지 아니면 체온이 올라가든지 몸이 뜨거워지면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땀을 배출한다.
수분을 배출시킴으로써 몸 안의 열기를 밖으로 빼내고 체온을 적당하게 조절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땀은 우리 몸을 식혀주는 일종의 냉각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땀은 99%의 물과 우리 몸속에 있던 노폐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노폐물들이 땀을 통해서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땀을 흠씬 흘리고 난 후에는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개운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땀을 많이 흘리면 몸속에 물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물을 찾게 된다.
사람 몸의 약 70%가 물이라고 하는데 땀을 흘리고 물을 마심으로써 몸속의 수분을 유지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몸이 안 좋을 때도 땀을 흘린다.
흔히 발한이라고 하는데 우리 몸에 안 좋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인체가 그놈들과 싸우려고 열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못된 놈들을 물리치고 나면 그 열기가 피부를 통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마치 큰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여전히 흥분하고 있는 군사들의 힘을 빼기 위해 포상을 주고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계속 모여 있으면 탈이 나기 때문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만 땀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숙련된 기술과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도 우리는 땀을 흘린다.
운동선수들이 흘리는 땀은 건강유지가 목적이 아니다.
자신이 세워놓은 목표를 이루고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한 땀이다.
더운 계절에 논밭에서 흘리는 농부의 땀은 소일거리 삼아서 주말농장을 일구는 도시민들의 땀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들의 땀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훈련소에서 군인들이 흘리는 땀은 전쟁놀이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과 전우들, 그리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한 고결한 희생의 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은 영국 하원의회에서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밖에 없다고 연설했다.
땀을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승리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땀을 흘려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땀이 없으면 열매도 성공도 승리도 없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땀 흘리는 것을 아랫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치부하여였다.
서양 선교사들이 테니스시합을 하는 모습을 본 고종황제가 “아니, 귀한 사람들에게 땀을 흘리는 일을 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빨리 하인들을 시켜서 하도록 하게.”라고 말했다는 우스운 일화가 전해질 정도이다.
땀 흘리지 않고 거두려는 사람들을 일컬어 ‘아니 불(不)’, ‘땀 한(汗)’, ‘무리 당(黨)’ 자를 모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한다.
이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을에 좋은 열매를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불볕더위가 밀려오는 여름에 땀을 흠뻑 흘려야만 한다.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서 김매기와 가지치기를 하고 병충해와 비바람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해야만 추수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땀을 흘려야 운동선수들은 시합에서 웃을 수 있고 예술가들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땀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