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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28. 2021

보기 나름이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살짝 돌려서 보는 시도들을 한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이고 우스갯소리로 하면 삐딱하게 보기이다.

어떨 때는 좀 건방진 모습으로 비치기도 해서 사람들이 속으로 ‘그래 너 잘 났다.

네 똥 굵다.’라고 할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태도가 재미있기도 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실 어떤 사물을 볼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그 사물의 본모습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앞면은 평평하지만 뒷면은 울퉁불퉁한 돌멩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돌멩이를 평평하다고 할 것인가, 약간 울퉁불퉁하다고 할 것인가, 심히 울퉁불퉁하다고 할 것인가?

어떻게 표현한다고 해도 정답일 수도 있고 오답일 수도 있다.

바라보기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까 내가 삐딱하게 본다고 해서 잘못 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도 일면 일리가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들은 다들 좋은 집에서 산다.

방 한 칸짜리 반지하도 그 정도면 괜찮아 보인다.

식구들끼리 식사할 때는 더 가관이다.

옷도 깔끔하게 잘 차려입고, 식탁에 올라온 음식도 보통이 아니다.

우리 식구들처럼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입고 밥 먹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는 볼 수가 없다.

저런 집에서 저런 사람들과 같이 살면 일평생 행복할 것 같다.

다툼이나 갈등이 끼어들 틈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드라마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무슨 문제들이 그렇게 복잡하게 꼬여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출생의 비밀, 재산 싸움, 사랑 싸움, 불륜 등 한 사람의 인생에 저렇게 종합재앙세트가 몰려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문제투성이다.

얼굴은 말끔한데 속은 시커멓게 타버렸다.

나는 그런 집에서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다.

그런 사람을 향해서 잘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미국의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올리버 색스는 진료 중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만났다.

뇌에 이상이 생긴 한 남자가 진료를 받고 일어서면서 자기 아내의 머리를 잡아당기더라는 것이다.

왜 그러나 했더니 그 남자의 눈에는 아내의 머리가 자기 모자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 남자에게 틀렸다고 할 것인가, 잘못 보았다고 할 것인가?

자기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이는 것을 어떡하라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책장을 넘기다가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다고 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내가 인지한 것과 다르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본 것인가?

어설프게 잘못 보고 나서 그것이 맞다고 핏대를 올린 것은 아닐까?

내가 틀렸다고 한 그 사람들이 오히려 제대로 본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조심스럽게 또 한 편으로는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내가 잘못 보고 있다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출퇴근 시간이면 교통방송에서는 차들이 거북이걸음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듣는 거북이 불편하게시리 거북이걸음이 뭐가 어때서?

달팽이가 가는 속도에 비하면 거북이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일 것이다.

거북이는 가만히 있는데 비교하는 대상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진다.

그러니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투덜댔다가 또 비가 너무 안 온다고 투덜대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비가 오니 운치 있어서 좋고 비가 안 와서 햇빛 짱짱한 날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비가 무슨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거창한 혜택을 준 것도 없다.

나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 안 좋게 될 수도 있고 남에게 안 좋은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좋은 것이 되기도 한다.

자기가 보기 나름이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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