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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18. 2021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를 만났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인사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신부는 첫 만남인데 수수한 모습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 같았다.

신부에게 신랑은 참 속이 깊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미 많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었겠지만 내가 해주는 말은 또 색다를 것이다.

신랑은 8~9년 전부터 알고 지내왔다.

그가 군대에서 막 제대하고 유학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아졌다.

그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건강이 약해지셨다.

안 좋은 일은 연이어 일어난다고 집안의 경제적인 사정도 너무 나빠졌다.

누가 보더라도 아들이 유학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아들도 그렇게 여겼는지 유학을 포기하고 부모님 곁에 남아서 돈을 벌겠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기술이 없는 청년이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그도 그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고 했다.




그런 당찬 결심을 하던 차에 나를 만난 것이다.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했다.

두 시간인가 세 시간인가 그렇게 우리 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가벼운 인사말들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타이르기 시작했다.

공부하러 떠나라고 했다.

여기 있어서 돈을 벌어봤자 얼마 되지도 않고 그 돈으로 집안을 회생시킬 수 없다고 했다.

네 엄마도 무슨 일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네가 있으면 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체면 때문에 일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너네 집안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힘든 생활이 몇 년 동안 지나갈 텐데 차라리 “아들은 지금 독일에 유학 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너는 어머니의 자부심이자 자랑이라고 했다.

네가 부모님을 책임지려고 생각하지 말고 너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는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거기서 엄청 독하게 마음먹고 살았다.

안 봐도 안다.

대학 4학년 때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계속 그 회사에 다닐 수도 있었는데 얼마 후 귀국했고 외국계 회사에 취직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직장을 옮기면서 진급도 했다.

언젠가부터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사람이 평생을 고생만 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꽃을 피울 때도 있다.

1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인생의 바닥과 하늘을 다 경험해 본 청춘이다.

“살아오면서 그때가 제일 힘들었지?”라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했다.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누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세 식구가 함께 한강에 뛰어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눈물을 삼키고 악착같이 버티다 보니 오늘까지 살아왔다.

살다 보니 살아졌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가정을 준비하고 있다.




주례 없는 작은 결혼식인데 나에게 성혼선언문을 낭독해달라고 부탁했다.

성혼선언문?

‘신랑 신부가 오늘부터 부부가 된 것을 일가친지들과 하객들 앞에서 선포합니다.’

한 문장이면 끝난다.

너무 짧다.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한 문장으로는 나의 축복을 다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축복의 말을 적어서 낭독하겠다고 했다.

살다 보니 내가 그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도 내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인생 참 모를 일이다.

슬픈 날이 지나면 기쁜 날이 오고 눈물을 흘리고 나면 웃을 때가 온다.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어려운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흐릿한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어쨌든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반드시 꽃필 날이 온다.

꽃이 벌써 피고 졌다고?

그럼 이제 곧 열매 맺겠지!

그리고 또 새싹이 돋겠지!

인생 그런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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