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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7. 2021

나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 가족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소원하던 일을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 달라며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떼를 쓰는 아이, 제 힘으로 신형 아이폰을 구하겠다며 알바를 뛰는 아이들은 말릴 수가 없다.

배낭여행 잠시 다녀오겠다며 내친김에 세계일주를 하는 청춘들도 있고, 유명하다는 산은 다 정복하겠다며 100대 종주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일이 끝나기까지는 말려도 귓등으로 듣는다.

꼭 한번 해보겠다는데, 소원이라는데 말릴 도리가 없다.


남한과 북한이 단일팀으로 출전했던 운동경기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며 응원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마치 오래전부터 한 민족 한 나라였던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곧 통일이 될 것만 같았다.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이고 소원이라면 누구나 관대하게 들어주려고 한다.




흔히 인생의 소원을 의미하는 의미로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을 쓴다.

중세 유럽에서 사형을 집행할 때 교수대 아래에 양동이를 엎어둔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죄수가 그 엎어진 양동이 위에 올라가면 사형 집행자는 죄수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은 후에 양동이를 발로 차면 사형 집행이 완료되었다.

그래서 ‘양동이를 발로 찬다(Kick the Bucket)’는 말이 ‘죽는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양동이 위에서의 마지막 말인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로 의미 변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사회의 악이라고 여겼던 사형수의 말조차도 마지막 말이라면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만큼 인생 마지막 말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생의 소원인 버킷리스트는 꼭 이루어야 할 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지난 2007년에 ‘버킷리스트’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가난한 정비공이었던 카터와 재벌사업가인 에드워드가 비슷한 시기에 말기암 판정을 받아 같은 병실에 입원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우연히 에드워드는 카터가 적어놓은 유언장과 같은 메모를 보았다.

거기에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두었는데 메모의 끝에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적혀 있었다.

그 글을 본 에드워드는 카터를 설득하여 둘이 함께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에 도전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두 노인은 병원을 나와서 자신들의 버킷리스트를 들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북극을 비행하고, 만리장성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모험을 즐겼다.

그러나 그들의 버킷리스트에는 이러한 대단한 항목 외에도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기’,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소녀에게 키스하기’ 같은 일들도 있었다.

사실 그런 일들이 더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카터는 에드워드가 즐겨 마시는 ‘루왁 커피’가 사향고양이의 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 나게 웃어댄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수년간 의절했던 딸을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외손녀를 보고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소녀였다.


버킷리스트들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그들의 인생도 한 줄씩 짧아져간다.

하지만 자신들의 실수와 잘못으로 틀어진 관계들은 한 줄씩 메워져 간다.


영화는 두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하기는 인생에 해피엔딩은 없는 것 같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어디에나 눈물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에 뭉클하게 밀려오는 진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이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의 인생 소원, 나의 버킷리스트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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