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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8. 2021

그냥 내버려두는 게 도와주는 거다

매일 지나가는 길인데 가만히 보니 가로수 밑에 민들레가 피었다.

도시의 왁자지껄한 먹자골목인데, 뭔가 좀 어수선한 분위기만 느끼던 길이었는데 그곳에 꽃이 피었다.

어떻게 이곳에 꽃이 피었을까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무관심해서 그랬나 보다.


길 양편으로 늘어선 가로수들은 몇 그루에 하나씩은 생활쓰레기를 버리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의 심리가 참 묘하다.

나무 밑이 아니라 탁 트인 곳을 잡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무 밑에 자리를 잡는다.

쓰레기가 없는 날이면 사나흘이든 일이 주간이든 텅 빈 공간이 된다.

그사이에 풀이 나고 민들레가 핀 것이다.

또다시 쓰레기봉지에게 자리를 빼앗길세라 잽싸게 꽃씨가 날아온 것이다.

사람의 발걸음이 끊겼더니 그사이에 꽃이 피었다.

가만히 내버려두었더니 민들레가 찾아왔다.

가만히 두었더니 악취 나던 나무 밑이 꽃향기가 나게 되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만 뭔가 정리가 되고 깔끔하게 되는 줄 알았다.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무질서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버려두면 이것저것 다 엉켜서 어지러워지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오만하고 무지한 생각인가?

내가 보기에 좋은 것들이, 내가 보기에 좋은 자리에, 내가 보기에 좋은 모습으로 자리를 잡을 때 그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풀이나 꽃들이 자기들이 좋게 여기는 자리에서 자기들만의 모습으로 돋아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내가 아는 꽃과 풀은 그 이름을 불러주었지만 내가 모르는 것은 그냥 잡꽃, 잡풀이라 했다.

길가의 풀 한 포기조차도 내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했다. 모든 것이 다 나 중심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가꾸려고 하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뽑아버린다.

민들레 같은 것은 애당초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한 만 년 정도 지나서 미래의 인류가 우리 동네에 와서 유적 조사를 한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지금 1만 년 전 사람들이 살던 세상에는 닭과 돼지와 소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고 할 것이다.

다른 짐승들의 뼈는 구경하기도 힘들 테니까 말이다.


인류는 너무 오래전부터 자기 위주로 초목과 화초를 가꾸고 농작물을 경작하고 가축을 관리해 왔다.

먹고살기 위해서 그랬다.

먹지 못하는 것들은 순위에서 밀려났고 제거되었다.

먹지 못하더라도 인간들에게 쓸모가 있으면 살아남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조금씩 사라졌다.

그들도 지구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존재였고 자기들의 세상에서 주인공이었을 텐데 인류에 의해서 소리 소문 없이 희생되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 억울했을 것이다.

같이 살 수 없겠냐고 항변도 못했고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가만 내버려두면 알아서 꽃 피고 열매 맺고 씨 뿌린다.

적당히 자리 차지하다가 적당히 비켜준다.

그게 자연의 질서이다.

가로수 밑에 잠깐 자리 차지한 것뿐인데 민들레에게 눈치를 주면서 비키라고 하는 것은 너무 무정하지 않은가?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을까?

그냥 바라만 볼 수는 없을까?

그냥 좋아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 아닌가?


민들레에게만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말이 아니다.

풀이든 꽃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좀 가만히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못 미더워도 가만 두면 대개는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

물론 어색하고 낯설어서 몸이 근질거릴 것이다.

그래도 조금 지나면 익숙해진다.

괜히 뭐 좀 안다고 손댔다가 더 망가뜨릴 수도 있다.

어떤 때는 가만히 있어주는 게 도와주는 거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다가 기발한 것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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