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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30. 2021

당신의 기억은 어디에 저장되어 있나요?

나는 솔직히 컴퓨터를 믿지 않는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파일들의 안정성을 믿지 못한다.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겨서 몇 번 포맷을 해 보면 안다.

똑똑하다는 컴퓨터도 하드가 망가지면 그때까지 저장했던 모든 파일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다.


컴퓨터는 믿을 게 아니라 잘 사용해야 하는 물건이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도 중요한 파일들은 여러 곳에 백업을 해 둔다.

전에는 플로피 디스크, CD, USB 저장장치에 저장했지만 요즘은 이동식 하드디스크와 클라우드에 저장한다.

그중에서도 클라우드가 편하다.

그 이유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필요한 파일들을 다운받아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깨지든 망가지든 폭파되든 상관없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가상의 공간에 나의 파일들이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




클라우드가 가상의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가상은 아니다.

클라우드도 컴퓨터의 한 부분이다.

어딘가에 클라우드를 만들고 유지시켜주는 컴퓨터와 시스템이 있다.

그렇지만 그 컴퓨터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가상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 않지만 필요할 때 떡 하니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력이 작동하는 원리와 닮아 있다.

종이에 메모하고 종알종알 뇌아리며 달달 외운 정보는 누가 물어보면 척척 대답해낼 수 있다.

마치 컴퓨터에 저장한 파일을 열 듯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기억이 끊기는 경우가 있다.

마치 컴퓨터가 망가진 경우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있다.

‘이제 다 되었구나! 갈 때가 되었나 보다.’ 생각하며 씁쓸해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때를 만나더라도 아직 끝장난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클라우드가 숨어 있다.




평상시에는 그토록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 밥을 먹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TV를 보다가, 잠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다.

우리의 클라우드가 작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워지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때로는 어렸을 적 함께 놀던 소꿉친구의 이름을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지워버렸다고 생각하는 나의 비밀스런 실수와 잘못을 떠올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숨겨놓고 숨겨놓은 사실조차 잊어버린 돈뭉치의 위치를 알려주기도 한다.

아직 우리의 클라우드는 잘 돌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길을 걷다가 갑자기 자동차가 튀어나오면 몸이 움찔하면서 재빨리 피한다.

모기가 엥 하고 다가오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바닥이 철썩 내려친다.

맛있는 냄새가 나면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런 순발력과 운동감각과 분별력이 나에게 있었다니 놀랍다.

내 머리로는 알아차리기도 전에 몸이 기억해 내고 반응한다.




기억은 내 머리에만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의 모든 세포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

컴퓨터 파일을 하드디스크 외에 클라우드에 저장하듯이 우리의 기억은 우리의 온몸에 백업되어 있다.

그러니 내 머리가 좀 안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머리가 못 따라가면 몸이 따라간다.

머리로는 ‘공이 날아오면 이렇게 쳐야지’ 하는데 막상 몸이 안 움직일 때가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기억하고 있어도 몸이 모르고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머리가 안 좋으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머리의 약점을 보완한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돈 버는 머리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기억을 머리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몸에 저장한다.


그러니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몸이 둔하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내 기억은 남들이 모르는 곳에 저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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