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를 좋아한 지 오래되었다.
MBC청룡에서 LG트윈스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내 마음은 그 팀이 그 팀이다.
일주일에 6게임을 치른다.
전반기에는 3게임씩 2팀과 경기하고 후반기에는 2게임씩 3팀과 경기한다.
누구나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3연전을 싹쓸이해서 이기길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될 일은 흔치 않다.
감독들은 3게임 중에서 2게임을 이기길 바란다.
그렇게 해서 최종 승률 66.6%를 달성하면 시즌 우승을 할 수도 있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희망사항이다.
경기에는 이기는 경기도 있지만 지는 경기도 꼭 있다.
어제 10대 0으로 이겼는데 오늘 0대 1로 질 수도 있다.
그런 때는 어제 점수를 아꼈다가 오늘 두세 점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만큼 풀릴 때는 잘 풀리다가도 꼬일 때는 엄청 꼬인다.
야구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
초 일류팀도 삼류팀에게 고전할 수 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오늘의 경기는 오늘 끝내야 한다.
몇 년 전에 LG와 롯데가 이틀 연속으로 밤 12시 넘도록 경기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롯데의 승리였지만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그날의 경기는 이겼을지라도 한 시즌을 놓고 보면 이긴 게 아니다.
손해가 더 크다.
길게 내다봐야 한다.
오늘만 경기하는 게 아니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다.
오늘 이기고서 내일 모레 진다면 결국 지는 경기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면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 잘 지고 나서 내일을 기약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한 발 물러갔다가 두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게 훨씬 이득이다.
무조건 필승을 외치며 전력을 다 쏟아부으면 안 된다.
내일을 위해서 아껴야 한다.
패배할 것이 뻔한 경기는 빨리 끝내는 게 좋다.
그런데 야구는 9회까지 가야 끝이 난다.
9회까지는 좋든 싫든 경기를 해야 한다.
지는 경기에 뛰고 싶은 선수가 누가 있겠는가?
카메라가 자신을 비출 때마다 제발 다른 선수를 비춰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일 것이다.
꼭 자신 때문에 경기를 망친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카메라가 가장 많이 비춰주는 선수는 다름 아닌 투수이다.
야구는 투수가 지배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승리투수보다 패전투수를 더 많이 비춰준다.
승리투수는 공 몇 개 던지지 않고도 이닝을 금방 끝낸다.
반면에 패전 투수가 던지는 공은 승리 팀 선수들이 잘 받아친다.
패전 투수의 초조한 얼굴, 화난 표정, 안 풀린다는 입모양까지 카메라가 다 잡아낸다.
한 이닝에 30분을 소요하기도 한다.
그 긴 시간 동안 패전 투수의 얼굴이 계속 카메라에 잡힌다.
야구 경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패전투수가 주인공인 줄 착각할 것 같다.
그가 가장 많은 시간 동안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니까 말이다.
패전투수가 1회부터 9회까지 던지는 경기는 거의 없다.
투수가 한 경기에 던질 수 있는 투구 수의 한계가 있다.
한계 투구 수에 다다르기 전에 투수를 바꿔줘야 한다.
그때 등장하는 투수가 패전처리투수이다.
누구나 다 승리투수를 꿈꿀 때 누군가는 패전처리를 해야 한다.
패전처리투수라는 공식 명칭은 없지만 그가 맡은 역할이 지고 있는 경기를 깔끔하게 잘 지게 만드는 일이다.
기왕이면 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다.
빨리 끝내려면 위력적인 투구로 상대 공격수를 잘 잡아야 한다.
지더라도 맥없이 무너지면 안 된다.
우리가 만만한 팀이 아니란 것을 보여줘야 한다.
가능하면 자기 선에서 경기를 끝내야 한다.
또 다른 패전처리투수가 올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
그에게는 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패배 없이 승리만 가져가는 팀은 없다.
패배는 승리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 LG트윈스 홈페이지 www.lgtwins.com)